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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언정 Sep 24. 2021

남편의 대타 인생

대타 인생도 나쁘지 않았죠? 응, 아주 좋았어

온라인 예배를 드리던 어느 주일날 아침. 8시 반인데 남편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받는 걸 옆에서 지켜보자니 뭔가 부탁을 받는 듯한 모습이다. 온라인 예배이지만 찬양팀과 방송팀 몇 명은 교회에 나가야 했는데 찬양팀 인원이 부족해서 남편은 계속 리더와 싱어로 섬기며 매주 교회에 나가곤 했다. 아주 오랜만에 오늘은 비번이라고 한 상황이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네요. 네... 이따가 뵐게요"

"왜? 찬양하러 가야 돼?"

"찬양팀은  아니고...."


2020년 재정 감사를 남편과 K형제님이 함께 했고 K형제님이 오늘 예배에 참석해서 보고를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겼단다. 감사를 본 사람이 둘밖에 없으니 남편이 대신 갈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늑장 부리며 침대에서 뒹굴고 있던 남편은 급히 일어나 씻고 교회에 갈 준비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대타를 많이 서지? 회사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고...."

정말 그랬다. 회사에서도 발표를 하기로 한 사람이 있었는데 부득이 상을 당하거나 가족이 갑자기 아파서 휴가를 써야 되면 남편이 대신 나서곤 했고, 교회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일이 생기면 남편이 부탁을 받는 일이 잦았다. 남편의 말에 "그러게..."하고 내가 대꾸하다가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나서 이렇게 말했다.


"근데.... 당신은 소개팅에 대타로 나온 여자하고 결혼도 했잖아"

푸하하하.... 남편이 빵 터졌다.

"그래, 그래, 맞다, 맞아. 이래저래 대타 인생이네"




는 바야흐로 1995년 11월. 대학 졸업하고 1년 좀 지난 시점에 같은 과 친구 한 명이 결혼을 했다. 그 친구 집들이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나와 2차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 때 어울려 다니던 친한 친구들은 모두 7명이었는데  결혼한 친구를 뺀 나머지 6명이 모인 자리였다. 그 자리에 당시 유일하게 연애를 하고 있던 J의 남자 친구가 합석을 했고, 나를 포함해 5명은 사귀는 사람이 없는 상태였다.


졸업하고 다들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M이라는 친구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는 결혼도 하고, 집들이도 하는데, 이 나이에 나는 남자 친구도 없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J의 남자 친구가 갑자기

"ㅇㅇ씨, 제 친구 소개해 드릴게요"

하고 말하는 거였다.


대학의 락밴드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있는데 남자인 자신이 봐도 아주 멋있다고 했다. 친구 J도 함께 만난 적이 있다며 M과 잘 어울릴 거 같다고 적극 추천했다. 나는 옆에서 오고 가는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었다.

'락밴드라... 내 취향은 아니네...'  

소개팅이 잘 성사되어서 M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기를 빌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있고 일주일 뒤,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내가 소개팅에 나가야 된다는 거였다.

"왜? M이 하기로 했잖아?"

알고 보니 소개팅할 사람과 성이 같은데 본이 2개밖에 없는 성이라 동성동본일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당시에는 동성동본 금혼 조항이 살아있었다.


"아니, 그래도 나가서 확인을 해봐야지. 아닐 수도 있잖아?"

"아무튼 싫대. 네가 대신 나가 줘"

J도 여러 번 설득해봤지만 M의 고집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았다.


그때 내 나이 25살. 나는 여대를 다니며 미팅, 소개팅 물리게 해 봤고, 재미 삼아 소개팅에 나가기에는 그때쯤에는 아는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락밴드라니 음악이라곤 발라드밖에 모르는 나하고는 절대 맞지 않는 사람일 거 같았다. 시간 낭비일 게 분명하다 싶었고 그래서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나는 J의 만만치 않은 고집을 마주했고, 도무지 내가 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없이 대타로 나간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가 지금의 남편이다.  헤어질 뻔한 위기들도 겪으며 우리는 3년 반을 연애했다. 그것도 서울과 창원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그리고 결혼해서 무려 22년을 살았다.




교회에 가는 남편을 배웅하려고 현관 쪽으로 갔다가 신발을 신고 있는 남편에게 한 마디 던졌다.

"대타 인생도 나쁘지 않았죠?"

함박웃음을 띄며 남편이 대답해주었다.

"응. 아주 좋았어"


남편의 대답이 정말 고마웠다. 기가 센 아내(몇 년 전 남편의 간증문에 있었던 표현이다^^)와 자폐성 장애인 큰 아들, 고집 세고 예민해서 나름 또 힘들게 했던 둘째 아들과의 지난 세월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에도, 22년 결혼생활을 긍정적인 대답 한 마디로 요약해주니 마음이 뭉클하면서 행복했다.


남편, 감사해요. 지나온 20년보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20년이 훨씬 아름다울 거 같아요. 당신과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해요.


이 글을 통해 26년 전에 말릴 수 없는 쇠고집으로 나와 남편의 인연을 맺어준 친구 J와 M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남편과 나를 배우자로 엮어주시고 우리의 결혼생활을 인도하셨으며 앞으로도 인도해주실 하나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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