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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언정 Jan 31. 2023

아들의 핸드드립

내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아이의 모습을 만났다

요즘은 아침마다 민준이가 핸드드립을 배우는 중이다. 


작년 초였나 민준이 덕분에 주전자와 드리퍼 세트를 선물 받고 이참에 우리도 집에서 커피를 핸드드립해서 먹어보자고 했었다. 원두 가는 핸드밀도 사고 원두도 사서 대충 내 맘대로 핸드드립을 내려서 마시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회사에 출근해서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사곤 했던 남편은 언제부턴가 습관을 바꾸었다. 출근 전에 집에서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가게 된 거였다. 그러다가 몇 개월 전쯤부터 원두를 가는 일을 민준이에게 시켰는데 처음에는 부탁하면 갈아주기만 했던 아이가 얼마 전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커피 원두가 든 통을 꺼내 한 스푼 넣고 신나게 원두 가는 일을 해놓기 시작했다.      


물을 끓이고, 핸드드립 주전자에 옮겨 담고, 조심스럽게 물을 따르는 과정도 한 번씩 시켜보는 중이지만 아직은 여러모로 서툰 모습이 많다.      


그런데 어제는 남편과 내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아침 시간. 원두를 가는 소리가 들리고,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도 들리고, 이런저런 부스럭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많이 궁금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일어나 보니 싱크대에는 핸드드립의 흔적들이 자욱하고, 아빠가 평소에 들고 다니는 텀블러가 싱크대 위에 딱 놓여 있는데 열어보니 민준이가 내린 원두커피가 담겨 있더라는 사실!!!     


물론 맛을 보니 온도는 미지근하고, 맛은 커피 향 나는 보리차 수준. 남편은 깜짝 놀라며 아이에게 ‘아주 고맙다’고 하면서도 이걸 어떡하지, 커피를 다시 내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눈치였다.

“에이, 그냥 먹어요. 민준이가 처음 내려준 핸드드립 커핀데...”

남편은 말없이 텀블러를 챙겨 출근했다.     


오늘 아침도 민준이는 스스로 원두커피 통을 꺼내 원두를 갈더니 무작정 전기주전자의 스위치를 올렸다. 

“민준아, 주전자에 물을 넣고 켜야지”

나의 지적에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바로 주전자를 가져가서 정수기 물을 받았다. 

물이 끓자 핸드드립 주전자에 옮겨 담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물 부어요?”

하지만, 원두 전체가 젖을 만큼 고루 붓지는 못한다. 한꺼번에 물도 왕창 넣어버린다. 

“민준아, 이렇게 원두가 전체가 물에 젖게 해 줘. 그리고 기다리는 거야. 30초 정도. 그다음에 또 넣을 거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이지만, 이 반복이 얼마나 지속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끝내 배울지 못 배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몫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하고, 반복해서 또 이야기하고. 오늘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제대로 못해도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어린 시절 민준이는 무조건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하려고 하고, 조금만 지적해도 분노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시절의 민준이가 지금의 나는 기억날 듯 기억이 안 난다. 사춘기 이후로 평안한 시간을 많이 보냈던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그 기억들을 자꾸 붙잡으려고 애쓴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아이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어쩌면 큰 발전은 없는 매일의 삶에서, 여전히 아이의 미래가 두렵고 불안한 상태에서 오늘의 작은 감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오늘도 나는 아빠의 출근길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내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아이의 모습을 만났다. 아이는 이렇게 자신만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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