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희 Jul 26. 2023

회색 밖으로 걸어 나가면

안산에 대한 편지, 유희


  이경 씨, 어느덧 우리의 이야기가 이십 년을 훌쩍 넘어 이십 대 초반 우리가 만난 시절에 왔습니다. 제가 스물둘, 이경 씨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우리는 처음 만났지요. 안산에 있는 대학교에서 말입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들어가고 난 이후에도 무엇이든 되어보려고 부단히 애쓰던 기억이 납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제가 직장 생활을 하며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성실하게 학교 수업을 들었고요. 이경 씨가 앳된 목소리와 얼굴로 저에게 인사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대학 시절, 단 둘이 커피 한 잔 마신 적 없던 사이이지요. 하지만 이 편지를 계기로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으니 이 시간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에게 안산은 특별합니다. 고향을 떠나와 살게 된 곳도 안산이고, 다니던 직장도 안산이고, 직장을 그만둔 뒤 다니게 된 대학도 안산에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안산에서 살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여 안산에서 아이까지 낳았으니 안산은 이제 저와는 떼려야 뗄 수 관계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래서 안산은 제게 애틋한 도시입니다. 이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새로운 가정까지 이루게 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저도 이경 씨처럼 처음에는 안산을 회색의 도시로 생각했습니다. 회색 공장 건물과 회색 공장 연기, 회색의 작업복, 회색 비둘기. 이런 이미지들이 안산을 떠올리면 함께 떠올랐으니까요. 저의 감각 중 제일 예민한 후각으로 안산을 떠올리면 이런 이미지들이 한데 섞인 냄새가 떠올랐고요. 그리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반월 공단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저는 이 회색 안으로 들어가는 회색의 사람이 되는 듯했습니다. 

  반월 공단으로 버스를 타며 출퇴근을 할  때 차창 밖으로 많은 회색의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초록의 산과 갈색의 논과 밭, 색색깔의 열매를 보며 자란 제게 창 밖의 이미지는 낯설기만 했습니다. 왠지 쿨럭거리며 기침이라도 할 것 같은 메마른 가로수, 음식물 쓰레기 주변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모여들던 비둘기, 비슷한 모양의 회색 건물들은 생기 없는 풍경화 같았습니다. 공단으로 들어가는 차들은 항상 많았고, 버스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돈을 번다는 목적 하나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회색 공단 안으로 계속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 쯤 강력 범죄 같은 일들이 안산에서 일어나면서 안산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왠지 제가 모욕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아직도 안산 하면 좋지 않은 여러 일들을 떠올리며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안산을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안산에서 지낼수록 회색의 이미지들이 이 도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입니다. 공단을 벗어난다면 시골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산도 있고, 그 산속에는 다양한 울음소리를 내는 새도 있습니다. 곳곳에 있는 공원은 소풍 같은 산책이 가능할 만큼 멋지고요. 매 년 5월이면 열리는 거리극 축제도 근사합니다. 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편의 시설도 잘 되어 있으며 낮에는 한가롭기만 합니다. 안산도 여느 도시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범한 도시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이경 씨와 시간을 나눈 안산에서 조금 있으면 유치원에서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고 이 있습니다. 아직 해가지지 않았습니다. 집 앞에서는 낡은 빈집을 부수는 소리가 들리고요. 구름은 듬성듬성 떠가고 바람은 나무를 한쪽으로 끌어당깁니다. 환한 대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입니다. 이 십 대 초반, 옷 몇 벌만을 들고 왔던 열아홉 살의 고등학생은 이제 버릴 짐이 많은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이경 씨와 제가 함께 학교를 다니던 때와 다르게 안산도 많이 변했지요. 변화하는 것이 때때로 슬프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저 이경 씨와 지난날의 안산을 추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요.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기쁜 마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풍경 밖에서 나를 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