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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Aug 20. 2023

화장하는 기분

화장에 대한 편지, 유희

  

  이경 씨도 알다시피 저는 잘 웃는 사람입니다. 웃는 얼굴 가면을 쓴 것처럼 거의 웃음 띤 얼굴을 하며 사람을 만나지요. 잘 웃기 위해 노력했더니 사람을 대할 때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옅은 미소라도 짓지 않으면 우울하고 차가운 제 모습을 들킬까 봐 애써 미소라도 짓고 있습니다. 이 미소 띤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식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웃기지도 않은데 웃거나 불편해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웃고 있으니까요. "쟤는 왜 항상 웃지?"라는 생각을 자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웃음 없는 제 얼굴을 거울에서 마주할 때의 기분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회색빛의 여자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이런 제 내면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꽤나 처참한 기분이 들 것 같고요. 그래서 차라리 오해를 받더라도 웃자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경 씨도 알다시피 일 년 사이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여러 번 경험한 후에는 더 예민하게 기분을 화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와 남편 앞에서까지 기분을 화장하고는 합니다. 영민한 아이에게는 금방 들켜버리고 말지만 이게 제 하루를 대하는 태도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외적인 모습으로만 봤을 때 지금의 제 모습은  움푹 들어간 볼과 핏기 없는 피부, 메마른 표정을 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여자일 뿐입니다. 남편과 아이를 챙기고, 집안을 정돈하는 일에 거의 모든 신경을 쓰다 보니 외모를 가꾸는 일에는 저에게 미안할 정도로 소홀한 편입니다. 제대로 화장을 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요.     

 20대 때도 화장을 공들여한 적은 몇 번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로드샵에서 붉은색이나 분홍색의 립스틱을 고르거나, 번지지 않는 아이라이너를 찾고, 흰 피부를 가리기 위해 볼 터치용 화장품을 샀던 기억이 전부이니까요. 


  이런 제가 살면서 유일하게 화장을 제대로 했던 적이 있었는데 바로 저의 결혼식 날입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밋밋한 얼굴에 한 진한 화장 덕분에 저는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신부였습니다. 그냥 화장을 하지 말고 결혼식장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해볼 정도였으니까요. 화장을 잘하지 않는 탓에 화장한 제 모습이 어색했을 수도 있지만 짙은 아이라인과 인조 속눈썹은 왜인지 제 눈을 더 작아 보이게 했고, 덕지덕지 발라 놓은 파운데이션은 저를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했습니다. 인생에서 딱 한 번인 결혼식 날, 돈과 시간, 정성을 주고 최선을 다해 못생긴 신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꿈이었으면……."  


  20대 때 화장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 어색하고, 쑥스럽고, 엉망인 기억들로 가득합니다.  전에는 화장이 무조건 더 예뻐 보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화장이 매력을 더 드러내거나 콤플렉스를 감추거나 인상을 다르게 하기 위한 조력자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화장에 대한 무지와 게으름을 이겨내고 제대로 화장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쌍꺼풀 없는 눈, 듬성듬성 지저분하게 난 눈썹, 왠지 나이와 함께 낮아지고 있는 듯한 코, 립스틱을 바르지 않으면 검붉은 입술. 

  이런 얼굴에 화장을 하면 좀 달라 보일까요? 왠지 우울한 눈빛과 순해 보이는 처진 눈꼬리에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면 조금은 영악하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그동안의 화장이 저를 온전하게 드러내는 화장이었다면 이제는 나약한 영혼을 감추는 데 쓰고 싶어 집니다.   

  

  일련의 문제로 저는 요즘 다른 성격의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을 가장 잘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서 왔고, 이런 생각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아니기에 더 변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얼어붙습니다. 너무 많은 감정을 겪었고 지쳐있다 보니 이번 편지에 그대로 제 감정이 묻어난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됩니다. 아무쪼록 다음 편지에는 많이 안정되어 있는 상태로 이경 씨에게 갈 편지가 적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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