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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Oct 12. 2023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취향에 대한 편지, 유희

  큰 마음을 먹고 오래 봐두었던 액자를 주문했습니다. 책을 들고 편안하게 앉아있는 사람이 그려진 포스터가 담긴 액자입니다. 그림 하나 새로 걸렸을 뿐인데 집 안 분위기가 달라져 답답했던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집 안 가구의 위치도 바꿔보고 소품도 하나하나 바꿔볼까,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아늑한 공간으로 다시 바꿔봐야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집 안을 꾸민 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꾸며 놓은 집은 아이의 하원과 함께 금세 장난감으로 어질러지고요. 정리가 무색할 만큼 아이는 빠른 속도로 장난감을 늘어놓고 재잘재잘 떠들며 역할 놀이를 합니다. 

  

  아이에게 맞춰가다 보니 저를 위한 옷이나 음악, 책, 영화, 하다 못해 음식에 대한 취향도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스커트나 원피스를 좋아하던 저는 이제 주로 활동하기 편한 청바지를 입습니다. 재즈 대신 동요와 아이돌 음악을, 시나 소설 대신 그림책을, 독립 영화 대신 지브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봅니다. 그리고 매운 음식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먹던 저는 빨간 김치 하나에 물을 벌컥이며 먹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요. 취향만 놓고 보자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이전의 제가 잘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어느새 아이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제가 좋아하는 것이 되고 저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아이의 소꿉놀이를 위한 장난감으로 가득 찬 거실과 방 안 가득한 인형, 아이가 여기저기 그려 놓은 집 안의 낙서들은 이제 집 안의 메인 인테리어가 되었고요. 


  ‘취향을 가진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라고 하는데 단어 자체로 보면 참 어려운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것일까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아는 것.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그래도 이 현실에서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아는 것. 취향이란 어쩌면 이토록 사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요즘 적당히 타협하며 좋아하는 몇 가지에 만족하며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액자 하나를 걸어 둔 것처럼 말입니다.


 축축한 고양이 코에 뽀뽀하기. 

 토실토실한 고양이 엉덩이 주물럭거리기. 

 창밖을 내다보는 고양이가 보는 것을 함께 보기. 

 아이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기.

 나눠 먹으며 “아, 시원하다” 말하며 웃기. 

 퇴근한 남편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면 아이와 함께 달려가서 안아주기. 

 아이와 함께 잠들기. 

 예쁜 옷 대신 편한 옷을 찾아 입으며 만족해하기.

 좋아하는 커피 내려 마시기.


  어느새 거창한 것을 하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는 일 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에 만족하는 것이 취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사라진 예전의 취향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 같고요. 평범하고 시시한 일상이지만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동안 세상에는 제가 모르는 다양한 즐길 거리가 생겼습니다.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음식들, 누구의 음악인지 모르지만 좋다고 느끼는 음악, 다양한 패션과 화장품. 계속 뒤떨어져 있다 보니 이제는 관찰자가 되어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까지 듭니다. 이대로 지내도 괜찮다고 느낀다면 아무 문제없겠지요? 사실 취향이란 단어가 귀찮기도 하고요.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누워있을 수만 있다면 영원히 취향쯤은 먼 거리에 두고 싶어 집니다. 


   이따금씩 만나는 이경 씨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손가락에 여러 개 낀 반지와 신중하게 바른 입술 색, 이경 씨 얼굴빛에 맞게 고른 옷과 신발의 모양까지 생각나네요. 우리가 알고 지내 온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취향이 바뀌는 것을 여러 번 지켜봐 주었지요. 그 취향이 바뀌는 동안 우리의 생활이 달라진 것도 알고 있고요. 아마 더 나이를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어떤 취향이 또 생길 겁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이경 씨를 앞으로도 오래 바라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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