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편지, 유희
요즘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조금 괴롭지만 어쨌든 일상을 성실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와 남편과 고양이의 생활을 보살피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훌쩍 지나 있고요. 이렇게 지내다 보니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고작 아이와 남편,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이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그럼 저는 마치 집이라는 섬에 고립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면 더 그렇게 느끼고요.
이 고립이 어떤 때는 답답하고 어떤 때는 편하기도 합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다가 그냥 창문 너머 산 하나를 바라보는 쪽을 택합니다. 저에게 인간관계란 항상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지내는 것도 사실은 어색하고 불편해서 일 때가 많습니다. 이 웃는 얼굴 때문에 좋지 않은 쪽으로 오해를 많이 사기도 하고요. 저는 사람 앞에서 항상 긴장합니다. 편한 사람 몇몇을 빼고는 정말 지나치게 긴장을 많이 합니다. 말실수도 긴장된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고요. 잘해보려는 마음이 그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지나간 인연들을 살피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만남 뒤에 자기 검열이 없다면 조금은 가볍게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어쩐 지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나고 나면 자기 검열로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 같아 피로함을 느끼게 돼 만남 자체를 피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요즘은 이런 관계들을 생각하면 헛헛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모든 관계가 저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인가 하는 자책을 넘어서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하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되고요. 하지만 관계란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래 써서 잘 들어가지 않는 서랍장처럼 어딘가 헐거워져 자꾸 어긋나고 있을 뿐입니다. 계속 어긋난 상태로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지만 서랍장의 레일을 잘 고정해 잘 집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서랍장 안에 담긴 물건이나. 옷을 잘 정리하면 그만입니다. 서랍장은 원래 물건이나 옷을 담아두는 용도로 쓰이니까요. 사람과의 관계도 어긋난 대로 두는 게 편하다면 어긋난 대로 두고, 불편하면 잘 고치면 될 일입니다.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확률이 크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좋은 기억은 잘 남겨두고 좋지 않은 기억은 발판으로 삼아 다음 관계에 써먹으면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원래 사람과의 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만 나를 괴롭히자는 생각으로 이번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제 뱃속에서 나온 아이의 마음 하나 살피기도 고되고 고되는데 그냥 시간에 맡겨야겠습니다.
이경 씨, 저의 모든 말에는 악의란 없으며 이경 씨의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괜찮은 사람이며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저와 있을 때 이경 씨가 즐거웠으면 좋겠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편안한 기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머 감각이 없어 즐겁게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오래 산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편지는 끝나가지만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느낀 이경 씨와의 연대는 내내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