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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Jun 28. 2023

엄마와 쥐

자전적 이야기

 간밤에 쥐가 새끼를 낳았나 보다. 그것도 쥐덫 위에서. 어미 쥐는 잘못 밟은 끈끈이 쥐덫 위에서 세 마리의 새끼를 낳고 죽어 있었다. 그런 어미 옆에 눈도 못 뜬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어 있었다. 물컹한 핏빛 덩어리들은 쥐덫의 잔인함 앞에 제대로 꼬물거리지도 못해 보고 죽었을 것이다. 누런색 쌀통 옆에 놓아둔 쥐덫은 제 역할을 마치고도 여전히 그 위력을 뽐내고 있었다. 

 “혜영아, 얼른 쌀 가지고 와!”

 엄마의 목소리에 얼른 쌀통 문을 열었다. 버튼을 누르면 쌀이 밥솥 위에 우르르 쏟아지는 쌀통이지만 고장 난 지 한참 돼 쌀통 문을 열고 쌀을 퍼야 했다. 

 “엄마, 쥐가 쥐덫 위에서 새끼를 낳고 죽었어.”

 엄마는 아침부터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콩나물을 무치고 있었다. 이런 날은 잠자코 있다가 학교에 가는 게 좋다.

 “엄마 나가봐야 하니까 얼른 먹고 학교 가!”

 된장찌개가 담긴 뚝배기를 상위에 툭, 놓으며 엄마가 말했다. 방금 한 쌀밥 위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그런데 어쩐 지 밥 위로 숟가락이 가지 않았다. 먹는 둥 마는 둥 찌개 국물에만 숟가락을 옮기는 내게 엄마는 빨리 먹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듣기 전에 부지런히 밥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숟가락 뜬 밥을 입 가까이 갖다 대자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쥐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빨리 먹으라고 했지?”

 엄마는 입속에 밥을 잔뜩 밀어 넣은 채 말했다. 나는 숨을 참으며 몇 번 씹지도 않은 밥을 꿀꺽 삼켰다.      

 아침을 다 먹고 집 밖을 나서니 차가운 바람 속에 봄기운이 느껴졌다. 봄방학이 시작되면 지금보다 더 따뜻해질 것이다.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강물은 아직도 얼어 있었다. 낮이 되면 햇볕을 받고 녹은 물이 조금씩 얼음 위로 올라왔다. 이런 날씨에는 강물 근처로 함부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여니 반 아이들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어? 혜영이 왔다. 혜영아, 너 그거 들었어?”

 아침이면 자리에 앉아 책만 보고 있던 지영이가 나를 부르며 손짓했다.

 “야, 어제 지호가 죽었대.”

 “뭐?”

 지호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우리 반 아이였다. 작고 까만 얼굴에 매일 코를 흘리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니 듣고도 믿기지 않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제 6학년 오빠 둘이 지호한테 강물이 얼었는지 안 얼었는지 확인해 보라고 시켰나 봐. 얼음 위로 올라갔다 오면 새우과자 나눠준다고.”

 지영이는 흥분해서 말했다.

 “근데 강물이 깨진 거야. 어제 경찰도 왔다 갔다 하고 난리도 아니었대.”

 지영이는 말끝에 혀를 차며 말했다.

 반 아이들 모두 지호와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어울려 논 적이 없었다. 작고 연약한 까마귀 같던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고 아무도 그 아이와 더 어울려서 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다니……. 고작 새우과자 때문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모두 흠,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왠지 오늘만큼은 장난을 치면 안 된다는 걸 반 아이들 모두 알고 있는 눈치였다.

 선생님의 손에는 작은 화분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곧장, 화분을 들고 비어있는 지호 책상으로 걸어갔다. 뭉툭하고 거친 손으로 책상을 여러 번 닦아낸 후 선생님은 화분을 내려놓았다.

 ‘이럴 땐 하얀 국화꽃을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 꽃도 없이 초록 잎사귀만 있는 화분은 수업이 끝난 이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학교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안방에 누워 있었다. 엄마는 머리 아픈 일이 생기면 팔등을 이마에 얹고 눈을 감는다.

 “엄마, 오늘 우리 반 남자 애가 죽었어.”

 엄마는 내 말은 듣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날 밤, 가족 모두가 집에 돌아온 후 아빠와 엄마는 방에서 한참을 다투었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나고 아빠가 술을 마시고, 다시 엄마가 울고 난 뒤에 싸움은 끝이 났다.

 ‘밤이 계속 캄캄해지는 것 같아.’

 가족 모두가 잠이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얼음 위로 올라가는 지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애 엄마도 같이 강물에 들어가려고 난리도 아니었나 봐.”

 낮에 지영이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웅웅 거리며 떠다녔다.

 그때, 천장 위로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오늘도 새로운 쥐덫을 쌀통 앞에 놓았을 것이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자 아침에 느꼈던 쥐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비리고 아픈, 죽음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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