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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erking Nov 18. 2024

미묘하게 달랐던 이 날의 공원 이야기.

24년 10월 9일 있었던 일

Intro

1년 6개월, 고시생활을 그만둔 지 벌써 5개월이나 지났다. 지옥 같은 순간도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 거 같네.

5월부터 5개월 동안 고시를 하느라 마음속 한편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해왔다.

"한국사, 영어, 경제공부"


사실 한국사 자격증은 세무직 공무원으로 갈아타려고 준비했다가, 공직과 나는 정말 맞지 않을 거 같아서 취득만 하고 공무원 공부는 시작도 안 했다. 그리고, 영어는 취업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내 미래를 위해 요즘도 매일 30분씩 꾸준히 공부 중이다.


현재 나는 취준생이다.

매일 기업 1곳씩 자소서 제출, 경제뉴스 스크립트, 영어 30분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블로그 관리나 운동 혹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




24.10.09_미묘하게 달랐던 이 날의 공원 이야기.


오늘은 날이 정말 좋았다.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최근에 유독 쌀쌀했는데, 오늘은 반바지를 입어도 될 정도였으니 말이지.


2년 가까이 고시공부를 하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순간은 날씨가 좋았던 날들이었다.

선선한 바람맞으며 쉬고 싶었지만, 바람과 함께 머리에 든 지식이 날아갈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쉬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고 원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시가 끝난 뒤로는 친구와 약속이 없다면 노트북 하나 들고 무조건 공원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온다.

내가 자주 가는 공원은 서울에 있는 큰 천이랑 붙어있으며, 우리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며 책상과 의자가 있어 편하게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공원에 간 나는 평소와 같이 편의점에서 "아침에사과"(2,000원)를 하나 사서 앉았다.

빨간 날이라 그런지 평소에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꽤 많았다.

열심히 자소서를 퇴고하고 있던 중 인상이 좋아 보이는 두 분의 할아버지가 옆에 앉으셨다.


열심히 대화를 나누시는 할아버지 두 분.

두 분 중 한 분이 갑자기 내게 말을 거셨다.

"학생.. 인가? 혹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초록색 자전거 어떻게 쓰는지 알아요?"


학생 액면가는 아니지만, 뭔가 학생 같아 보였나 보다.

"아, 따릉이 앱을 까셔야 이용이 가능하고...."


어르신이라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까 고민하니 말이 장황해졌지만, 어르신은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셨다.

이때 뭔가 보통의 어르신 느낌은 아니었다.


잠을 푹 자서 그런가 평소보다 에너지가 넘쳤던 오늘의 나는 어르신의 말동무가 되어드리자고 생각했고, 어르신이 하시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어르신이 왕년에 IBM 인사 쪽에서 근무하셨던 것, 초창기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는 아주 큰 방에 꽉 찰 정도 컸다는 것, EDPS에 대한 것 등등

어느덧 80세라는 어르신의 눈에 생기가 가득하신 모습은 태어나면서 처음 본 것 같았다.


어르신은 자신이 현재까지 수 천 어쩌면 수 만 명의 사람을 뽑고 교육시켰다는 말과 함께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의 말투, 억양, 생긴 것 등 조금만 대화해 보면 느낌이 온다면서 내가 굉장히 똘똘해 보이며 성공할 관상이라고 하셨다. 나는 부끄러워서 그저 환하게 웃었고, 연거푸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대화가 끊기고 자리에 일어나는 어르신.

지속적인 서류 탈락에 꿀꿀했던 내게 큰 에너지를 주신 어르신이 감사해서 떠날 때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어르신 안녕히 가세요!"


어르신은 말없이 다가와 내 뒤에서 내 어깨를 따뜻하게 잡아주셨다.

"자네는 꾸준히 하면 뭐든 될 상이야. 날 믿어."


그저 한 없이 감사했다.



벅찬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다시 자소서 퇴고에 집중했고 제출할 때쯤 됐을까?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 단체가 내 옆에 앉았다.


"의자 좀 가져가도 될까요?"

50대 아주머니 무리 중 가장 마르신 아주머니께서 내게 물어보셨다.


그리고 나는 "네! 가져가셔도 됩니다."하고 속으로 무거운데 드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들지 못하시길래 자리에 일어나 의자를 옮겨드렸다.


내가 이 공원,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힐링한 것도 이번이 4번째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의자를 가져갔지만, 가져가도 되냐고 질문을 한 어르신은 별로 없었다. 

그런 어르신께 감사해서 별 거 아니지만, 의자를 어르신이 있는 곳까지 웃으며 가져다 드렸다.


불과 30분 전에는 내가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평상시엔 공원에 오랫동안 앉아있으며 대화를 할 일이 없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미묘하게 다른 이 일상이 내게 적지 않은 에너지를 줬는지 모든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게 됐다.


우리 집에서 나는 설거지를 담당하고 있다.

요리 담당은 어머니지만, 오늘따라 늦게 오시길래 자리에 일어나 스팸과 계란말이를 했다.

맛은 그냥 그랬지만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기분 좋았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끝났다.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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