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홀로서기, 유치원 입학을 하다.
다섯 살, 아이는 두번째 새로운 환경에 홀로서기를 한다.
첫번째는 어린이집, 두번째는 바로 오늘 유치원이다.
두번에 걸친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으로 이미 유치원을 경험했고, 그 뒤로는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였다.
아이가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잠'.
네살을 절반쯤 보낸 뒤, 코로나로 가정보육이 길어지고 그만큼 자라나 잠도 줄었다. 그러니 낮잠 없이 종일 놀 수 있는 유치원은 아이에게 천국이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유치원에 가는 첫 날, 입학이다.
유치원 입학식은 코로나의 여파로 부모님은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식이 진행된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몸에 밴 아이는 오늘따라 더 늦잠을 잤고, 10분 늦게 도착했다.
유치원 등원길부터 두근대는 맘이 내내 주체가 안된다. 너무 뛰어서 더 그랬을지도.
"혹시라도 힘들거나 피곤하면 집에 가고 싶다고 선생님한테 꼭 말해. 그럼 엄마가 바로 데리러 갈게!"
당부해놓은 말이 계속 맘에 걸려 핸드폰을 곁에 두고 진동이라도 울리면 놀래서 확인하길 수차례, 하원 시간이 가까워져온다. 아이는 거의 날아오다시피 뛰어와 내 품에 안긴다.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과 긴장 속의 시간들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버린다. 아무일도 아닌 것에 괜한 걱정을 한 셈이지만, 그래도 결국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정말 해피엔딩, 그 중에서도 베스트가 아닐까.
유치원을 나서며 너무너무너무 즐거웠다고 이야기 해준다. 엄마가 긴장한 걸 마치 다 알고 있었던것처럼. 눈은 반짝반짝, 세모입, 손은 나와 꽉 맞잡은 채. 대견하고 기특한데 왜 이렇게 더 아가처럼 느껴지는지 팔을 크게 벌려 꽈악 안아준다. 꼬옥 아닌, 꽈-악.
내 자리는 기린이고 간식은 무엇을 먹었고 여자친구가 더 많고 오빠랑도 놀았고 종알종알 끝이 없다.
너무너무나 다행이고 그저 많이 고맙다. 이제 걱정은 조금 내려 놓고 아이와 함께 충분히 설레어도 될 것 같은 확신이 차오른다.
오늘도 즐겁게 보냈어?
하원한 아이와 만나면 건네는 첫 마디,
"오늘 뭐 배웠어?"
"친구들이랑 뭐 했어?"
"선생님이 뭐 가르쳐 주셨어?"
당연히 친구를 만나러 가고, 무언가 배울 것이며,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질문을 하면 엄마가 원하는 답은 얻기 어려울 것이다. 대답이 어려운 아이도 있을테고 대답을 하지만 일부일 뿐이다. 그럼 스무고개하듯 엄마는 계속해서 물어본다. 엄마도 궁금하니까.
이런 질문이 계속 될 수록 아이는 생각한다.
'왜 궁금하지? 왜 물어보지? 그게 왜?' 엄마는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아이도 궁금하다. 엄마가 왜 이러는지.
아이에게 어린이집은 어떤 의미인지(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들이랑 놀고 같이 밥도 먹어, 선생님도 있고 아기도 있어, 내가 아기 미끄럼틀 도와줬어"
가면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동생들도 있는 곳, 아이에게는 그게 전부인 곳이다.
아이와 눈높이를 같이 하고 "오늘도 즐겁게 보냈어?" 라고 물어봐주는 관심 있는 한마디. 그거면 된다.
그럼 아이는 즐거웠던 일들을 한가득 떠올리며 대답한다. "응!!!"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그에 따른 '감정'으로
아이의 정서가 만들어진다.
블록을 가지고 성을 쌓았을 때의 '느낌'
소꿉놀이로 만든 밥을 먹을 때의 '느낌'
선생님이 들려주는 동화를 들었을 때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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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이 말이다. '무엇'을 했는지 아이의 기준(감정)에 따라 매겨진 기억의 순서를 엄마의 기준으로 정렬하게 만드는 질문은 혼란만 가져다줄 것이다. 마치 잘 놀고 있는데 장난감 정리를 시키는 상황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이나 순간에 대한 현상보다 느낌을 우선으로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도 함께 그 감정의 울타리로 들어가보자. 아이의 생각에 어른의 말이 더해지면 아이의 감정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어른인 나도 감정을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삐지고 짜증 내고 화 내는 것처럼,
아이의 감정도 엄마가 먼저 읽어준다면 모든 말과 행동이 봄날처럼 따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