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고의 영화. 데이빗 린치의 초현실주의적 걸작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BBC가 수여한 이 거대한 타이틀 덕분에 대중들에게 수많은 오해를 받으며 필요 이상의 질타를 받았다.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이 영화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많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장면이 진짜였고 어느 대사가 가짜였는지 구분하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게 주된 평론 중 하나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문장의 구조를 예시로 들어, 문장 간의 관계에 따라서 뜻이 달라지듯 선후관계를 구분해도 말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 어느 게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예술은 다만 진실을 폭로할 뿐,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 '폭로'라는 것도 예술가와 예술의 개성과 특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관객(혹은 독자, 혹은 플레이어, 혹은 관람객)은 자신만의 답을 도출해낼 수 있다. 그런 관점에 따르자면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확실히, 관객에게 그 진실을 폭로했다. 그 방식이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영화의 문법이 아닐뿐. 그럼에도 관객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어, 어느 정도 답을 제시했다. '꿈'이라는 키워드로.
영화를 보았다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황폐함을 느꼈을 것이다. '할리우드Hollywood'라고 하는 거대한 시스템에 베티가 얼마나 환희했는지, 그리고 다이앤이 얼마나 절망했는지 관객들은 보았다. 기억을 잃은 '리타'가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를 보고 자신의 이름을 정하는 낭만적인 장면에서는 흥미로워 하고, 실렌시오 극장에서 '녹음된Taped' 노래를 듣는 장면에서 이상한 처연함을 느끼고, '카밀라'가 '다이앤'과 사귀면서도 영화에 관련한 문제로 점차 파멸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과 비극적인 감정을 느낀다.
이런 '감정'을 따라가면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렇게 어려운 영화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시각에 따라서 다른 조형물로 보이긴 하지만, 결국 일맥상통하는 키워드들은 있다. 자면서 꾸는 꿈.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지게 되는 꿈. 그리고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에서 느끼는, 각자 마음 속에 있는 폐허. 나는 처음 관람할 때는 그것에 집중하여 보았다. 꿈의 폐허, 폐허의 꿈. 어느 쪽이든 말이 되기에 슬프고 비극적이며, 불안하고 기괴하다. '베티' 쪽이 현실이건 '다이앤' 쪽이 현실이건,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분명 성공과 실패에 관한 깊고 질척한 우물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그 우물의 감촉을 상상하면, 사람은 사색에 잠길 뿐이다. 그런데 데이빗 린치는 이렇게 환상적이고 섬뜩한 악몽으로, 확실하게 잡아내었다. 그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는 것은 필시 영화를 보는 기쁨과도 이어져 있다고, 나는 믿는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결국, 전통적인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깨부수면서도 한 가지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성공한 전위적인 걸작이다. 이 영화는 자기 자신의 마음대로 이해해도 상관 없으며, 그렇게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독법을 쥐어 주고서 다 함께 시청해도 다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수수께끼다. 세상에는 이런 작품도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형식을 뒤엎은 수수께끼'가 이렇게 깊은 폐허와 사랑을 보여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개봉한지 20년이 넘은 영화지만, 여전히 이 영화의 에너지는 생생하다. 마치 어젯밤 꾸었던 꿈처럼 황폐하고, 신비롭다. 그리고 동시에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