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나 Sep 15. 2022

단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부기팝 인 더 미러 판도라>와 성장에 대한 산문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중학교 때 어떤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 캐릭터 사진을 SNS 프로필에 걸어두고, 다소 감각적인 문구를 적어둔 친구 A는 대학을 다니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운동과 요리를 새로운 취미로 가지게 되었다. 열정을 지녔던 예술을 좋아하던 친구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일을 하거나, 조금 포기 해버 리거나, 여전히 쓰거나 그리고 있다. 우리가 함께 모였던 시간은 언제인가 끝나버렸고 사회 속에서 고립되거나,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 낯선 환경 속에서 몸에도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눌러가며 하루하루를 무사히 마감하고 있다. 오늘도 별일 없었지, 오늘은 좀 심했지, 오늘은 꽤 괜찮았지. 그런 말들로 다독여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읽거나 보는 양은 훨씬 줄어들었고, 내용은 조금 더 고요해지고 덜 뜨거우며 시크해진 건 줄어들었고 다정함이나 단호함이 함께 늘었다. 사리분별을 조금 할 줄 알게 되었고, 사람을 덜 믿으면서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또 독서 취향이 예전과 그렇게 달라진 것도 아니라, 여전히, 오타쿠 짓을 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것은 카도노 코우헤이 작가의 <부기팝 인 더 미러 판도라>인데, 현재 시점에서는 절판된 오래된 라이트노벨이다. NT노벨이라는 레이블은 한 때 국내 서브컬처(조금 더 정확히는 남성향 라이트노벨)의 기수인 듯했으나, 지금에서 그 레이블로 나온 책들은 거의 다 절판인 듯하다. 그만큼 오래된 작품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소년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미래 예지 능력. 그 능력으로 소소한 이득을 챙겨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본인들만의 비밀 결사를 만들어 노래방에 집결하여, 능력을 사용해가며 미래를 점치거나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소녀의 환상이 모두에게 공통되게 보이고, 그녀를 '소유'하고 있는 범죄 집단이 소년들과 얽히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부기팝 판도라>는 작가 카도노 코우헤이가 인물 간의 관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조명하며, 또 필요할 때에는 단호하게 내던지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200p 남짓하는 라이트 노벨의 분량에 걸맞은 서사를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균형감각으로 재단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각 인물들의 배경은 짧고 굵게 제시되며, 독자들이 모두에게 공감하기 적혀 있다.

무엇보다도 <부기팝 판도라>가 마음을 울린 점은 소년들의 우정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부패한 어른들의 사회가 한 어린이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짓밟았는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보고 지나칠 수 없었던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소재로 박진감 있게 버무려낸다.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섬세한 작품이다. 이 '섬세한'은 한국 소설들을 수식하는 주요 단어인데, 카도노 코우헤이의 '섬세한'은 인물에게 다정하다기보다는 '서사 전체를 짜며 무엇을 전달할지'를 골라내는 것에 가깝다. 어떤 방식으로든 파멸하는 인물들도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지는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소년소녀들의 이야기 속에서 카도노 코우헤이는 단 하나를 전달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들의 선한 의지, 선량한 마음이 있다면 살아가는 데에 축복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너희들을 짓밟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강하게 있기를


이 조금 오래된, 초능력자 청소년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사회를 막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 중에는 남을 위한 마음이 제일 큰 것 같다. 모두가 이기적으로 살기 쉬운 사회고, 점점 힘들어질 세상이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는다면,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저버리기도 어렵다. 


선의를 경험한 사람은 베풀기도 쉽다. 경험하지 못해도, 이야기 속에서 만난 가상의 인물들이 베푼 마음들이라면, 자연스레 상상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아직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우리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무너져 가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이었던, 그런 소년들처럼. 소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른이 되려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선의를 지닌 사람이.


2022.09.15 22:30




추신 1. <부기팝 시리즈>는 장르적으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SF 작가들이 읽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먼저 활동하고 계시는 작가님들은 이 책을 비롯한 라이트 노벨들을 끼고 사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계보를 읽어 내려가는 후발주자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건 아니겠지?

추신 2. '소년'은 중성적 명사로 사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금과 후추와 새와 사상경찰:먼 곳에서 온 애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