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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나 Mar 01. 2023

1Q84 : 결국은, 사랑의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달한 세계

※해당 글은 1Q84의 중대한 스포일러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를 소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최대 걸작이나 최고의 베스트셀러 같은 호칭들을 빼고 읽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 3권, 1,2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을 고려했을 때 이 소설은 품고 있는 이야기보다 조금 더 분량이 부풀려져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3권을 반토막냈어도 이야기는 흘러갔을 것이고 더 응집성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명확한 근거가 없어서 명징한 비판은 하지 못하겠지만, 단순한 감상으로는 그렇다.


이 책은 여러 장르를 경유한다. 마술적 리얼리즘, 범죄, 심리극(몇몇 장면은 데이빗 린치의 초현실적인 시퀀스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로맨스, 드라마. '선구'의 설정은 옴진리교를 생각나게 하며 '리틀 피플'과 '1Q84년'이라는 소재는 조지 오웰을 소환시킨다. 아오마메의 친구인 아유미와 아오마메의 서사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전후로 '폭력'이라는 소재에 예민한 시각을 보인 하루키 특유의 냉철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축으로, 1Q84는 사회적인 소설이 된다. 그렇게 해서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폭력적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리틀 피플), 누군가는 그걸 이용('선구'와 '리더')하기까지 하는 야만의 세계에서. 누군가는 계속 살해당하고 희생당하며('아유미'),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는 ('덴고의 아버지') 세계에서.


작가는 1Q84라는 모형적인 세계를 만들어 마술적인 설정을 기용한다. 뇌우, 섹스 없는 임신(엄밀히 말해서는 없었던 건 아니지만), 리틀 피플, 두 개의 달. 그렇지만 그 세계는 비유적으로는 현대다. 이 사회 그 자체다. 그저 그것을 작가 특유의 감각과 문학 레퍼런스로 잘 포장했을 뿐이다. '1Q84년(=고양이 마을)'은 우리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앞으로도 겪을지도 모를 잔인한 세계이다. 리틀 피플이 날뛰는 냉엄하고 잔혹한 세계이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뜻하지 않게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서로를 찾으려고 하는지도 모르다가, 결국 필요한 것은 서로였다고 깨닫는다. 그걸 위해 1200페이지가 필요했다.


다시 정리하자면 1Q84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1Q84의 주요 레퍼런스로 하루키의 전 에세이 <언더그라운드>가 기용되곤 하는데, 당연한 수순이다. 작가는 90년대의 폭력을 목도했고 독자는 독자의 연령대에 알맞게 폭력의 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우리 세대(20/30)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기대한다. 이렇게 해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덴고와 아오마메는, 원래의 세계로. 그러니까 인간이 원래 살아야 하는 세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루키가 도달한 세계는 이런 모습이다. 그곳은 사랑이 있는 세계이자 '네'가 있는 세계다. 이는 그의 초기작과는 제법 다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세계를 등지고 '너'를 택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 세계마저도 끌어 안는다. 결국 사회가 없으면 개인도 없고 그 역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함께(이 소설에서 말하자면, '작은 것') 미지의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당연히 개인주의적인 하루키는 이를 자기계발 에세이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쿨하고 무심하게, 이제는 조금 아저씨 같아져버린 태도로 툭툭 내던진다. 과거의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덴고는 아오마메와 만났고 '작은 것'을 끌어 안기로 한다. 아오마메는 친구들을 기억하기로 한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하루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폭력을 잊지 않을 것. 사랑할 것. 그리고 눈을 돌리지 않을 것. '어떤 의미에서든'.  




1. 그렇지만 동일한 주제로서는 <해변의 카프카>가 조금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하루키는 어떤 이야기를 펼쳤을지, 새삼 기대된다.

2. 후카에리 캐릭터는, <태엽 감는 새> 에서 나왔던 여성 캐릭터들의 총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아내 빼고) 그리고 라이트 노벨 히로인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서브컬처에서 활동했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경멸당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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