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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Mar 24. 2024

맞장구

남의 말에 반응하기

“요즘에는 부모님에게 무엇을 해 드려야 효자인 줄 아세요?”한 신부님이 사석에서 신자들에게 문제 냈다. 아제 개그인가 싶어서, ‘돈 잘 드려야 효자!’라고 하겠지 짐작했다. 웬걸. 답은 뜻밖이었다.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효자래요.”조금 과장이긴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로부터 맞장구조차 받지 못하는 신세라는 말이다. 그 흔하고 쉬운 맞장구조차 받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얼굴만 보여줘도 효자’라는 말도 생기겠다. 


맞장구는  감정의 교감이다. 감사하거나, 호응하거나, 격려를 나타내기도 하다. 반응은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해 준다.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이라는 말은 '공유하다', 또는 '함께 나누다'는 뜻의 라틴어 'Comunicare'에서 생겨났다. 나눔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것이다. 격려하는 맞장구는 상대에 대한 응원이나 성원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강석 김헤영과 함께

 라디오 PD로 연출할 때 방송 진행자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 있다. PD가 스튜디오 창 밖에서 잔뜩 인상 쓰고 있으면, 진행자는  내가 뭐 잘못하고 있나 싶어 말이 딱딱해진단다. “진행자가 하는 웃기는 말에 PD가 손뼉 치면서 웃어대면요, 진행자는 작두 타게 돼요.” MBC 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 진행자 강석이 해준 말이다. ‘작두 탄다’는 말은 흥이 올라 신들린 연기 한다는 뜻이다. 김혜영도 비슷하게 말했다. “아이디어 내라고 해놓고 PD가 팔짱 딱 끼고 인상 쓰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와요. 머릿속이 하얘져요, 하지만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온몸 흔들면서 재미있어해 주면 신이 나죠.  아이디어도 막 쏟아져요.”


일반 방송 출연자도 비슷하게 말한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지낸 이규미박사가 오래전에 들려준 말이다. “방송에 출연하면, 누가 진행하느냐에 따라, 제 말솜씨가  달라져요. 맞장구 잘 쳐주는 진행자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말이 잘 나와요. 이문세 씨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요. 이문세 씨가 제 눈 쳐다보면서, 제 이야기에 집중해 주었어요. 계속 맞장구치면서 재밌어해 주니까, 방송이 절로 잘되더라고요.”전문 방송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마이크 앞에서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진행자가 적절하게 맞장구 쳐주면 말이 술술 풀리게 된다. 

이문세

일상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아', '예'"처럼 맞장구 쳐줘야  대화가 잘 이루어진다.  듣는 사람이 잘 들어주니까 말하는 사람도 잘 말하게 된다.


 일본은 맞장구 문화가 발달했다. 몸짓으로도 그렇고, 언어표현에서도 , ‘아, 그렇습니까?’(あ、そうですか) 같은 맞장구를 지나칠 정도로 쓴다. 맞장구 잘 쳐서 더 예뻐 보이거나 호감이 가는 여성을  ‘맞장구 미인’(あいづち美人)이라고 부른다. 그런 문화 때문일까. 일본 사람들의 대화 모습은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과 비교하면 달리 보인다. 부드럽고 단정하다.

맞장구를 전문적으로 치는 사람 중 하나는 판소리에서 북을 잡는 고수다. 명창이 한가락하면 고수는 북을 쳐서 장단 맞춰주면서,  ‘얼씨구’, ‘좋지’와 같이 추임새 넣어 분위기를 복 돋아준다. 슬픈 대목에서는 추임새도 슬픈 소리로 하고, 즐거운 대목에서는 흥겨운 어조로 한다. 추임새가 어느 부분에 강세를 주고, 어떤 어조로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고수가 추임새를 청중과 함께하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명창이 노래 잘하려면 고수가 좋아야 한다. 해서 ‘일고수 이명창’(一鼓手二名唱), “판소리 공연에서 제일은 고수고 다음은 명창이다”라는 말까지 생겼나 보다.


라디오 프로그램 만들 때 분위기 돋우려고 인위적으로 맞장구 쳐주기도 한다. 코미디 콩트 연기 할 때, 웃기는 장면에 맞추어 웃음소리 나 박수소리 들려준다. TV 시트콤에서도 흔히 쓰는 기법이다. 남과 같이 웃으면 더 즐겁고, 웃음의 강도도 세 진다. 맞장구가 효과 있다고 마냥 쳐서는 안 된다. 우습지 않은 장면에 웃음소리가 들어가면 억지스럽다. 그런 게 반복되다 보면, 맞장구 웃음소리가 짜증스러워진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도 맞장구치는 게 흔하다.  신문 기사나 인터넷에 오른 콘텐츠에 댓글을 달거나, 좋고 나쁨을  표시한다. 페이스북에서도 좋은 내용이 나오면 ‘좋아요’를 누른다. 처음에는 나도 내용을 살피고 눌렀지만, 요즘에는 무심해졌다. 평소 좋아하는 사람이나,  내게 ‘좋아요’했던 사람이면 이름만 보고도 그냥 눌러버리기도 한다.  별생각 없이 해준 ‘좋아요’ 맞장구라도 받으면 받을수록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좋아요’를 제법 받은 내 글 보면서. '뭔가 좋은 점이 있었나 보다'하고 좋은 쪽으로 혼자서 생각한 적도 있다.  분명, 별생각 없이 누른 ‘좋아요’가 적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힘들고 지친 사람 좀 많은가. 일일이 마음 나누기도 쉽지 않은데, 서로서로 맞장구라도 자주 쳐주면 어떨까. 그게 부담스러우면 눈으로라도 맞장구쳐주면 좋겠다. 마음이 전해질 게다. 진심 어린 맞장구는 감동까지 준다.  맞장구는 사랑이니까. 

맞장구  Chat GP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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