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차폭등이 켜지지만 그렇지 않은 차도 있다. 그런 차를 몰면서 터널에서 차폭등을 켜지 않는 운전자도 있다. 무심히 챙기지 못한 경우도 있겠지만, 더러는 으레 그런다. 갑자기 어두워지거나, 어두운 곳에 들어서면 안전을 위해 차폭등 켜야 한다. 차폭등 켜고 조심조심 운전하는 걸 소심하다고 보는 걸까. 이 정도 어둡다고 뭘 그리 유별나게 구냐고 대범해하는 걸까. 어쨋거나 자기 눈이 좋아서 일께다. 하지만 다 자기처럼 눈이 좋은 건 아니다. 눈이 불편한 사람도 있다. 특히 어두운 곳에서 시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차폭등 켜지 않은 차량은 식별하기 힘들다. 아차 하면 함께 위험해질 수 있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 남 때문에 터널에서는 차폭등을 꼭 켜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모두 다 자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와는 다르게 알고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아는 걸 내가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걸 그 사람이 모를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해석하는 게 다르다. 각자 다른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빨간 색안경 끼고 하늘 보면 빨간 하늘이고, 파란 색안경 끼고 보면 파란 하늘이다. 남이 나처럼 생각해주기를 기대할 수가 없다.
‘제삼자 효과(the third-person effect)’ 이론이 있다. 사람들이 미디어의 영향력을 평가할 때, 일반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과 자기 자신에 대한 영향력에 대하여 이중적인 잣대를 갖는 경향이다. 예를 들면, 선정적인 방송 프로그램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염려하는 시청자가, 자기 자신은 분별력이 있어 그리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방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력은 과소평가하고, 남들에 대한 그런 영향력은 과대평가하기 쉽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 해병대는 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인 일본 섬 이오시마, 유황도(硫黃島)에 상륙했다.. 해병 6명이 유황도 정상에 성조기를 꽂아 세우는 모습의 사진으로 유명했던 전투가 벌어졌다. 미군은 2만 4천8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일본군은 2만여 명이 자결 옥쇄했던 2차 대전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다. 당시 일본군은 이오지마에 주둔하고 있던 흑인 사병과 백인 장교로 편성된 부대에 선전 전단을 뿌렸다. 흑인 사병들에게 투항하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 전단 내용에 영향받은 사람들은 흑인 사병들이 아니라 오히려 백인 장교들이었다. 그들은 흑인 사병들이 그 전단 내용에 영향을 받아 탈주할까 봐 염려하여, 이튿날 부대를 철수했다. 1949년과 1950년 사이에 프린스턴대학의 사회학자 필립스 데이비슨(W. Phillips Davison)은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기록을 검토하면서 이 사건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제삼자 효과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1]
누구나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운전 능력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90퍼센트 이상이 “나는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도 다를 게 없다. 송동근이란 분이 강연을 할 때마다 청중에게 “여러분 중에서 자신이 비슷한 나이 또래 및 같은 성별의 평균보다 자동차 운전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손 드는 사람들은 보통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2]
터널은 차량의 소통을 위해서, 땅속이나 산이나 바위를 뚫어 낸 길이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 세대, 성별 같은 집단 사이 장벽이 점점 높아가는 요즘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터널을 뚫어야 한다. 편견도 깨고, 오해도 허물고, 아집도 파내야 한다. 소통의 터널을 잘 만들었다고 소통이 제대로 되는 게 아니다. 남과 나 자신이 다름을 분명하게 아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