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효과
나만 그런가? 언제부턴가 친구 대여섯이 만나면 한 주제로 같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둘씩, 셋씩 나누어 이야기한다. 한자리에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동시에 쏟아진다. 지지 않고 자기 이야기 늘어놓듯 말들 참 잘한다. 아는 건 왜 그리 많은지, 미처 생각 못 했던 요모조모를 기막히게 짚어낸다.
말한다고 다 듣는 건 아니다. 듣는다고 다 들리는 것도 아니다. 영국의 소리전문가, 줄리안 트레저(Julian Treasuer) 박사는 TED 강의에서 인간은 커뮤니케이션할 때 60퍼센트 정도의 시간을 듣는데 쓰는 데, 알아듣는 것은 25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들어도 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이다.
못 알아 듣는 원인 중의 하나는 소음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 소통과정에서 소음이 생긴다. 귀에 시끄러운 물리적 소음도 있지만, 생각에 방해되는 심리적 소음도 있다. 사람마다 나고 자란 배경이 다르고, 배우고 익힌 것도 다르며, 생각하는 방향도 다 다르니 문화적 소음도 생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 모두를 '소음'(noise)이라고 부른다. 제대로 알아듣으려면 이런 소음을 줄여야 한다.
게다가, 저마다 말을 하려하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둘러보면, 말 잘하는 사람은 쉽게 떠 오른다.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은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안 알아주니까 그럴까. 말하면 앞서는 것이고, 말 들으면 뒤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설까. 틈만 생기면 자기 이야기를 정신없이 쏟아 붇는 이가 적지 않다.
누구 만나서 한바탕 수다 떨고 난 뒤 느낌은 어떤가. 실컷 떠들고 난 뒤에 마음에 남는 기억이 별로 없으면, 쏟아놓기만 한 듯해서 씁쓸해지기도 하다. 반대로 뭔가 옮길 만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거나,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면 건진 듯하다. 그래서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는 대화의 첫 규칙으로, 정성껏 듣는다는 ‘경청’을 꼽았나 보다. “말하고 있을 때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뿐이다.”
경청으로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자녀 문제, 부부 문제, 회사문제, 개인의 소소한 일에서 나랏일까지 소통이 안 되어서 일어나는 문제가 좀 많은가. 상대편 말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상대방 마음을 얻게 되고, 어려움이 풀리기도 한다. 예일대 총장을 지낸 심리학자 제임스 로렌드 James Rowland Angell는 총장직을 오랫
동안 수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경청'이라고 했다. “뿔을 기르지 않고 안테나를 기르면 됩니다.”
좋은 줄 알면서도 하기 힘든 게 경청이다. 경청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를 낮추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일단은 참고, 상대를 먼저 생각해 주어야 한다.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반응해 주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사랑하듯 대해야 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고린도 전서 13:4)
이 귀한 말씀에 ‘사랑’을 ‘경청’으로 바꾸면 경청하는 방법이 보인다. “경청은 참고 기다립니다. 경청은 친절합니다. 경청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경청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경청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저마다 말들 하고싶어 하는 세상이다. 한 말씀하려 들지 말고 한 말이라도 더 들어주면 어떨까. 좋은 말 해주기보다 좋은 말 나오도록 잘 들어주거나, 내 말은 참고 상대 말 기다려 보는 건 어떤가. 그렇게 인심 쓰다보면 문제도 풀리고, 소중한 배움의 기회도 오지 않을까. 경청은 할수록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