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 전시 리뷰
1. 송은
송은문화재단은 1989년에 설립된 비영리 기관으로, 이름은 송은(松隱), 즉 숨어있는 소나무라는 뜻이다. (숨어있는 소나무처럼 조용하고 꾸준하게 미술계의 젊은 인재들의 전시와 연구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문체부 소관의 재단법인이며, 주로 미술분야 학술연구비 지원이나 송은미술대상 등의 미술상을 시상하기도 한다. 청담동에 위치한 현재의 신사옥 ST송은빌은 스위스의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롱이 건축했으며, 사옥의 디자인 또한 미술재단답게 예술적으로 수려하다.
2.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
송은미술대상전은 2001년부터 매년 운영해 온 미술상으로, 올해는 서울시립미술관의 협력과 까르띠에 코리아의 후원을 통해 수상 혜택을 확대했다. 올해에는 512명의 지원 작가 중 20인의 신작을 선보이고, 최종 1인을 선정했다. 대상 수상자는 상금과 송은에서의 개인전 개최 기회,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1년간 입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송은문화재단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상자의 작품 1점씩을 소장품으로 매입하게 된다. 작가들에게는 매우 영예로운 상일뿐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미술상인 것!
3. 눈길 가는 작품들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선정된 작가 20인의 작품을 청담동 송은 신사옥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작품들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1) 허연화 - 푸른 물속을 유영하는 듯한 작품들
허연화 작가는 '물'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 온 작가이다. 작가는 물이 담기는 용기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고, 유동적인 속성 그리고 물성 자체만으로는 스케일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관심사인 '물의 이동'을 주제로 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라이트닝 케이블로 물의 순환 과정 중 하나인 벼락을 시각화하고 해양 안의 생태계인 산호가 구축되는 방식을 표현함으로써 물의 이동, 순환, 그리고 생태계의 고리가 완성되는 과정을 설치 작업으로 보여준다.
이 작가님은 원래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분이었는데 이번 선정 소식을 듣고 내심 반가웠었다. 회화와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표현 또한 눈길을 사로잡지만, 작품의 내용 또한 물질의 탐구나 생태계의 순환 같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어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 갈지 기대되는 작가이다.
(2) 박웅규 - 징그러운 것들을 경건하게
박웅규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하였고, 한국과 일본의 고전 불화의 양식을 차용하여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어키는 대상을 소재로 삼아 '부정성'에 대해 탐구한다. 작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혐오하는 나방, 지네 같은 벌레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되, 이를 불교화 같은 성스러운 종교적 도상으로 표현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낯선 느낌을 들게 만든다.
이번에 작가가 전시한 4점의 작품은 각자 흉터, 내장, 벌레, 가래의 네 가지 혐오물(?)들을 표현한 것인데, 어떤 것을 묘사했다고 설명을 듣기 전에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아주 섬세한 테크닉으로 심지어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질 수 있을 만큼 수려하게 표현하였다. 이뿐 아니라, 이 네 가지 혐오물들은 불교 사천왕의 형상으로 성스럽게 표현되면서 부정하고 성스러운 것의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3) 유화수 - 말 그대로, 사시나무 떨듯 떠는 나무들
이번 송은미술대상전의 대상 작가, 바로 유화수 작가이다. 유화수 작가는 기술의 발달이 인간과 노동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로 나무를 이용한 작업들을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주거단지에서 잘려 나간 느티나무 열두 그루를 작업의 주재료로 채택하였다.
사진 앞쪽의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에는 가구의 일부분 같은 부속품들이 붙어 있다. 그루터기와 가구 둘 다 나무에서 시작된 것인데, 어떤 것은 제거되어야 하고 어떤 것은 가공되어 인간에 의해 사용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뒤쪽 벽면에 일렬로 설치된 나뭇가지들은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가면 나뭇가지가 온 힘을 다해 부르르 떠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나무가 잘려나갈 때 느꼈던 전기톱의 움직임이기도 하고, 또 자신을 잘라낸 인간들에 대한 공포일 수도 있겠다.
위 사진에는 나오지 않은 스마트팜에서 재배되는 나무 작업도 있었다. 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고안된 첨단 기술로 더 이상 인간에게 필요 없어진 나무토막 그리고 그곳에 기생하는 버섯을 돌보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4. 결론
동시대 작가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 그리고 사회적 고민들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굉장히 다양한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확실히 최근 미술계의 화두는 자연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가 가장 핫토픽인 것 같다.
큰 상인 만큼 리워드도 여러 가지가 지급되는 것 같은데, 대상작가인 유화수 작가의 개인전도 매우 기대되는 바이다!
5. 관람정보
월요일-토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30분
무료 관람
도슨트 시간 안내: 월요일 - 토요일 11:00 / 12:00 / 15:00 / 16:00
Tip 1) 운 좋게도 도슨트 타임이 겹쳐 처음부터 끝까지 투어를 들을 수 있었는데 약 45분 정도 소요되었으며, 내용이 아주 알차고 도슨트 님의 전달력이 아주 좋아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 맞춰 참여하시기를 추천드려요!
Tip 2) 지류로 된 전시 리플렛은 하루 50부 한정으로 배포한다고 합니다. 리셉션에 한번 문의해 보세요!
<참고>
케이옥션 블로그 '유영하는 그림과 조각, 작가 허연화'
아라리오갤러리 '박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