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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삼 Jul 31. 2024

대치동 강사의 대나무숲

물려줄 게 (돈 외에는) 없는 부모들

  나는 학력 르네상스 세대라 불리는 9n년생이다. 사교육 메카 대치동 원주민이다. 10년 차 대치동 강사다. 나는,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의 증가와 동시에 신기하게도 해마다 추락하는 실제 학력의 목격자다.


  나는 아이를 낳은 적 없으니 부모가 아니며, 낳지 않을 예정이니  앞으로도 부모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라면, 아니 어른이라면 응당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물려줄 것들을 알고 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알려줄지 교수법 연구는 당연하고, 어디까지 지도할지, 도와줄지, 선을 그어줄지 양육의 묘를 연구한다.


  언제 아이들에게 한계 없는 사랑을 줄지, 또 언제 한계를 설정해 줌으로써 안전하게 성장시킬지 고민하고 관련 문헌, 서적을 읽는다. 관련 분야를 공부한다. 전문가들 조언을 찾아본다. 기록하고 몸에 인이 박이게 새긴다. 수업에서 아이들과 함께 적용한다.


  함께 오래 수업수록 아이들이 마음을 고, 공부에 열망이 커지고, 지식과 지혜가 성장하는  기쁘다. 일은 나에게 고통보다는 행복이다. 이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나의 모성애이자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애틋하게 위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학부모들 자녀가 공부하기를 하면서 자녀만큼, 아니 자녀의 100분의 1만큼도 공부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치열한 '먹고사니즘' 인 경우, 안타깝고 이해하지만 순전히 그럴 마음이 없어서  하는 부모들도 많다. 다음은 유형은 다 다르지만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 parenting이다.


  아이 사교육에 투자하면서 본인은 자녀 양육에 대한 공부가 없, 아이에게 알맞은 교육과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아이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를 파악하지 못해서 있는 장점마저 잃게 만든, 사교육에 대해 단단한 착각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학원에만 맡겨놓고 부모의 의무를 안 한, 그릇된 고집으로 개입해서 잘 클 수 있는 아이를 망친, 어른들은 내내 거실에서 TV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는 방에서 공부만 하라고 한다, 사치품 신상 업데이트는 훤하게 알고 있지만 성장하는 자녀들과의 소통 업데이트에는 까막눈이다.


  부모가 금쪽이다. 자식을 학원에 맡기고 정작 부모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뭘 모르고 는지, 뭘 알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무지에 대한 무지'다.  변화하는 입시, 나아가 변화하는 세상 따위는 차치하고 내가 낳은 내 자식에 대해서조차 무지몽매하다.


  다음은 내가 보아온 금쪽이 부모의 5가지 유형이다.




1.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실패하고 좌절할 기회'를 부모가 박탈한다. 아이를 감정의 무균실에서 키워 평생을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게 한다.


  학원 직원 왈, 신입생 입학테스트 후 상담을 하면 '아이가 상처받으니까 점수를 모르게 해 달라' 또는 '아이가 상처받으니까 시험을 다시 보게 해 달라'는 부모가 꽤 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 아이는 시험을 싫어하니까 안 보게 해 주세요'도 있다. 부모가 이런 말을 한 경우 중에 건강하게 입시를 겪어낸 아이는 없었다. 부모 말대로 '상처받는 ' 외엔 할 줄 모르는 순두부 멘탈로 자란다. 부모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2. '집에서 그런 거 해본 적 없어요' '원래 책 안 읽어요' '저 그런 거 몰라요'


  학교나 학원 이전에 가정에서 선행되어야 할 <교양, 습관, 독서, 상식, 예절, 처세> 등 인간 기초 소양을 지도하지 못하고 문화적 자원을 물려주지 못하는 소득, 재산과 상관없이 무능한 부모다. 한 사람의 인격형성 과정은 당연히 세심하고 복잡한 것이다. 제 때 해줘야 할 것들을 놓치면 이후에 아무리 사교육에 돈을 많이 쓴다고 한들 만회가 안 된다.


  모든 교육기관 이전에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인적, 문화적 허브는 가정이다.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이다. 아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가장 많이 가르치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부모다.


  부모 역할을 다 하지 않으면서 학교, 학원 탓을 한다. 욕심내서 학원에 보내고 비싼 것들을 사주고 입히고 여행 다니면서도 정작 시기마다 가장 중요한 자극과 학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영유아 시절부터 편하게 먹이겠다고 아이가 글을 읽기도 전에 유튜브에 먼저 중독시켜 버린다. 한참 눈을 맞추고 안아주고 정서를 발달시켜야 할 나이에 핸드폰을 쥐어주고 중독되게 만든다. 한글을 읽히기 시작하고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할 나이에 TV, 컴퓨터에 먼저 익숙해지게 만든다. 클래식 음악, 어린이 동요를 충분히 들려주기도 전에 자극적인 가요에 먼저 노출시켜 버린다. 기본 가정교육도 않은 채로 사교육을 시작한다.


   경우 아이의 뇌 발달에 손상과 피해는 '불가역적'이다. 시기별 단계별 꼭 필요한 자극과 훈련을 충분히 먼저 지 않고 시기를 뛰어넘는 자극과 중독을 심어줬기에 아이의 뇌가 일찍이 망가진다.


  어린이, 청소년기에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걸 넘어 지배당하도록 소비습관, 경제관념을 망친다. 관람가 연령 제한을 무시하고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게 한다. 밥을 먹지 않고 군것질과 정크푸드를 먹고 싶은 대로 먹게 한다. 밤에 몰래 핸드폰을 보느라  자고 낮에 졸려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데도 부모는 어찌할 줄 모르겠다며 지도를 포기하거나 문제상황을 알지도 못한다. 공부보다 훨씬 중요한 기초 생활습관들이 망가진다. 이는 발달에 치명적이다. 학업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준다. 몸도 뇌도 시기를 놓쳐버려 영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손상은 불가역적이다. 부모가 어려서부터 넓고 높고 건강한 <규율과 통제의 울타리>를 만들어주지 않은 대가는 혹독하다. 사춘기가 되고서야 훈육과 규제를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 반발이 심해 불가능하다. 시기를 벗어난 중독과 자극으로 망가져서 온 아이들 머리에 해주고 집어넣어 준들 공부 따위가 들어갈 리 없다. (발달의 4대 성질은  기초성, 적기성, 누적성, 불가역성이다.)




3. '집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학원 5개 다니는 게 뭐가 많아요'


  학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지 못하니 갈수록 더 학원에 의존한다. 방학 때는 아침에 가서 밤에 오는 그저 학원의 상술일 뿐인 특강들에 돈을 쓴다. 이렇게라도 학원에 보내놓으면 아이가 공부한다는 착각에 위안을 받는다. 아이는 있던 장점마저 잃고 인성까지 망가진다. 악순환이다. 이런 아이들은 입시도 성공할 리 없다.  그러니 실패하면 학원 탓을 한다. 


 아이는 주 7일 학원 스케쥴로 꽉 차 스스로 공부할 시간 확보가 불가능한 것이 문제다. 이 문제가 문제임을 인식조차 못하는 부모가 근본 문제다. 부모가 아이의 상황을 지켜보고 파악하지 않는다. 아이의 힘들다는 말을 투정 취급하거나 또는 '아이가 부족해서 그렇다'로 귀결시킨다.  


  혼자서도 공부하는 아이로 만들어주는 것 외에 그 어떤 공부 지름길도 없다. 학원에 가면 다 공부한다는 건 '착각'이다. 선생님이 수업하면 선생님만 공부하는 거다. 실에 몸만 앉아있다고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산책을 하고 독서를 한다면 훨씬 인생에 도움이 될 텐데 싶은 아이들이 있다. 휴식 시간도 없고 공부에 대한 열망도 없고 매일 brain fog 상태로 앉아있기만 하니 뇌는 더 망가진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하는 방학 특강에 보내면 아이가 공부를 많이 한다고 착각한다. 본인 욕심과 허영으로 아이는 소화도 못하는 선행학습을 하면서 아이가 들고 다니는 교재 수준이 곧 아이 실력이라 착각한다. 가둬놓고 숙제까지 학원에서 다 해야 집에 보내주는 학원을 두고 '관리가 잘 된다'라고 표현한다. 진심인가? 부모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불감증이 심하면 상황을 알고도 위태롭다는 건 모르는가? 지금 그 상태로 아이가 내년도 내후년도 그 이후로도 계속 버틸 수 있겠는가?


  아무리 하루 종일 육신이 학원에 머물러도 아이가 공부에 대한 의지가 없고 열망이 없고 밑천이 없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학원도 강사도 아무 소용없다. 당연하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남이 강요하는 메시지가 아닌  자신이 직접 도달한 결론을 훨씬 잘 기억하는 '특'이 . 



4. '저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마음이 약해서 못하겠어요' '혼을 내면 애가 공부 안 하겠다고 할까 봐 무서워요'


 '권위적'인 것'권위'는 다르다. '권위적인 부모'는 싫지만 '부모로서의 권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도력이 없는 부모가 부모인가? '마음이 약해서'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겠다고 자포자기하는 부모가 많다. 모든 아이가 다 순수하고 천진하지 않듯이 모든 부모가 다 심지 굳고 어른답지는 않은 것이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만큼  반드시 훈육도 필요하다. 둘 중 뭐 하나 모라자선 안 된다. '마음이 약해서'라니.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기본 도덕과 규율도 주지 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신 미약한 어른이 왜 기어이 아이를 낳았는가? 책임지지 못하겠으면 낳지 말아야 한다. 이미 낳았으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지도력이 없는 부모는 아이에게 건강한 울타리를 세워주기는커녕 아이에게 휘둘린다. 양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인 일관성이 없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 이는 아이를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한다. 아이는 자유와 존중 그리고 적절한 통제가 주어져야만 마음에 안정을 느끼며 성장한다. 적절한 통제가 없으면 인간은 오히려 불안해하는 본능이 있다.


  아이가 공부만 하면 심각한 수준의 일탈과 악행도 눈감아준다. 그러다가 너그러이 넘어가야 할 일엔 갑자기 못 견디고 화를 내기도 한다. 할 말을 정확하고 단호히 전달하지 못해 불필요하게 어르고 설득을 하곤 한다. 또는 아예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넋두리나 폭언을 하기도 한다. '마음 읽기'라는 단어 뜻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적용하다가 결국 아이에게 키를 쥐어주고 부모가 컨트롤당하는 형국이 된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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