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라고 해봤자 어지러운 식탁 위를 정리하고 깨끗이 한번 닦은 뒤 노트북을 펼치는 것이다.
노란 불빛의 독서등을 켜고 작가 담다D로 변신한다.
밖에서 안이 보일까 쳐두었던 커튼을 걷어본다.
어두워진 단지에 불 켜진 창문이 드문드문 보인다. 저 멀리 길게 줄지어진 소각장 전구가 반짝거린다.
마치 동해바다 앞 게스트하우스 거실의 큰 창문 앞에 앉아 오징어잡이 배 불빛을 전등 삼아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오늘은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십 분도 못되어 끄고 조퇴할 참이었다.
글이 안 써질 것 같아서였다. 평소 보지 않던 TV도 한번 켜보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그렇게 재밌다는데 그걸 한번 봐볼까?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데 징~징하고 특유의 진동이 울린다.몇 분 후 또 한 번 울린다. 몇 분 후 또 울린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내 글이 뭐라고 구독까지 해주신 독자분이 연신 라이킷을 눌러준 것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슈퍼파워 같은 게 솟아났다.
TV를 끄고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고마웠다. 뭐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앉아 글만 썼다.
글을 쓰기 위해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아침밥을 했다.
그날은 초복이었다. 미리 주문해둔 삼계탕용 닭 세 마리를 큰 솥에 넣고 푹푹 고았다.
한 마리는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남편을 위한 것이었고, 한 마리는 귀요미 J와 S의 것, 한 마리는 쌍둥이 언니와 형부의 것이었다.
그렇게 정성껏 끓인 삼계탕과 딸 J를 쌍둥이 언니네로 보내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서둘러 글을 쓸 생각이었다. 김치 한 가지를 놓고 면치기를 하다 지금 내 모습이 더 절실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식탁 앞에 앉았는데 마치 김이설 작가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시인을 꿈꾸는 소설 속 여자가 매일 밤마다 필사를 했던 바로 그 식탁 앞에 내가 앉아있었다.
밤 12시 되길 몇 분을 남겨두고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이 날은 브런치 북과 윌라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의 마지막 제출일이었다.
브런치 북이어야 응모가 가능했고 아직은 두서없는 주제의 이야기들을 그저 묶었다.
초고가 없었던 두 개의 글도 새로 써넣었다. 이렇게 첫 브런치 북을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에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지만 가진 시간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생애 최초 내 집 마련이 아닌 생애최초 브런치 북인 <쌍둥이 자매의 공동육아를 담다>를 마련했고,이 프로젝트에 마지막으로 응모된 브런치 북이 되었다.
현재 진행형인 공동육아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도전을 하며 온종일 글만을 생각하는 하루를 보냈다.
물론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 딸내미 챙기느라 글 한 줄 쓰고 밥 먹이고 글 한 줄 쓰고 씻기고 하긴 했지만 절실한 글쓰기의 하루라는 점에서 또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다른 작가님들의 응모된 브런치 북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다양하다.
정말 대단하다.
정말 재밌다.
정말 공감된다.
난 정말 안 되겠다.
엉덩이에 글쓰기 근육이 붙지도 않은 초보로서, 한 주를 시작하며 글 쓸 힘이 조금은 빠져있었다.
그것은 내 부족한 글 때문이 아닌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딸 J는 어린이집 긴급 휴원에 들어갔고, 온종일 육아와 집안일과의 전투 끝에 기록할 힘이 1도 남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주제는 웃프게도 공동육아이다.저녁 6시 이후 3인 이상은 못 모인다. 이 현실에서 나는 <코로나 시대의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기록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공동육아를 하고 있었지만 더 안성맞춤으로다가 해보려고 한다.
덮었던 노트북을 다시 열게 해 준 이 밤의 독자님을 위해서 열심히 잘 쓰고 싶다.
이제 퇴근할 시간이다. 무보수로 연장근무를 해버렸다.어느새 드문드문 켜져 있던 불빛은 온데간데없고 어두운 창 밖 멀리로 오징어배 불빛만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