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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Aug 01. 2021

코로나를 버텨내는 엄마들에게

꼭 필요한 단어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지 2주쯤 지났을까?


알림 하나가 도착했다.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책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 :)



7월이 지나고 8월을 시작하는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은 쓸 수 있을까.
저 창문에 흔들리는 목련 가지에 대해서, 멀리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대해서, 늦은 밤 귀가하는 이의 가난한 발걸음 소리에 대해서, 갓 시작한 봄의 서늘한 그늘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여섯 살, 네 살 조카아이들을 살피고 집안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체력은 부족했다. 진득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딱 한 달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잠은 언제나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김이설, 목련빌라 중에서,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2020)



요즘 이랬다.

오늘은 쓸 수 있을까?

짜장과 짜증의 관계에 대해서, 살림 좀 하는 남편의 기준에 대해서, 제주 관광객인 우리가 모르는 진실에 대해서, 딸 J의 기특하고 고마운 말 한마디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딸을 재우다 함께 잠들어버렸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온몸으로 버텨냈다. 그나마 작은 숨통이었던 공동육아의 삶조차 살아낼 수 없는 하루하루는 육체적, 정신적 소모가 상당했다.


어떻게든 글을 써보려고 졸린 눈을 부릅뜨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한 줄이 안 써진다. 머릿속에 이 거 써서 뭐할 건데?라는 부정적 생각들이 채워진다.

결국 한 문장도 쓰지 못한다.


글을 써보려고 하루는 유튜브에서 어두운 기운을 환기시킬 노래를 찾아 듣는다.

처음듣기만 하다 화면을 켜 모니터를 응시한다. 여기가 콘서트장이다 상상하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하루는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누워서 전자책을 편다. 책이라도 읽어야 마음이라도 덜 고달픈 하루가 될 것 같아서다. 결국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몇 페이지조차 넘기지 못한다.


7월의 31일 중에 대부분이 이런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었다.


코로나가 나만 겪는 일도 아닌데 이번엔 좀 세게 우울이라는 감정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무기력과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동생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그러니까 3년 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쓸 것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그러나 쓸 시간이 없었고, 머릿속을 정리할 공간이 없었고, 나에게 집중할 틈이 없었다. 이제는 조용히, 고즈넉하게, 쓸쓸히, 오롯이, 동떨어져서, 가만히, 차분하게 같은 단어들을 누릴 수 없었다.

  (김이설, 필사의 밤 중에서,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2020)



코로나는 엄마들에게 조용히, 고즈넉하게, 쓸쓸히, 오롯이, 동떨어져서, 가만히, 차분하게 같은 단어들을 누릴 수 없도록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이기에 오히려 위에 나열한 단어들을 더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엄마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금 나에게는 저 단어들 중 하나 만이라도 누릴 수 있는 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안다.


소설 속 시인이 되고 싶은 주인공이 저 단어들 하나하나를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을 위해서, 나를 찾기 위해서 주변의 것들을 완전히 내려놓았던 그 쉽지 않은 결심과 실행을 책을 읽는 내내 지지하고 응원했었다.


고맙게도 딸 J가 빨리 잠든 덕분에  ‘조용히’, ‘차분하게’라는 단어를 누려본다.

그저 하소연 같은 말들을 글로 배설하고 있음에도 마음은 차오른다.

글쓰기라는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브런치의 알림이 내게 울림이 된다.



엄마들은 누려야 한다.

조용히, 고즈넉하게, 쓸쓸히, 오롯이, 동떨어져서, 가만히, 차분하게 같은 단어를.


그래야만 길고 지긋지긋한 코로나와의 싸움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엄마들이 이 중 단 하나의 단어만이라도 누릴 수 있는 내일이 되기를 망한다.





* 김이설 작가님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와닿은 문장을 빌어 글을 써보았습니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조금씩 책을 읽는데 단숨에 읽은 책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참 좋습니다.



* Photo by engin akyur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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