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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Jun 04. 2021

고작 그 정도의 말

미안해, 고마워, 안녕.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연애 8년, 결혼 8년 차 도합 16년 지기이다. 함께하면서 점차 말이 줄었다.

그냥 눈빛, 표정만 봐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분이 어떠한지 알 수 있으니까.


남편은 회사, 나는 집, 각자의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엔 서로의 에너지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물게 된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정말 지쳤었나 보다.

현관을 들어서며 인사를 건네는 남편에게 한 마디 인사도 하지 않고 식사 준비를 했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나의 한 마디에 남편은 들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자신도 종일 힘들었는데 따뜻한 한 마디도 어렵냐고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고생했어!", “힘들었지?” 고작 이 짧은 한 마디 해주는 것이 어려웠다.

사실은 나도 남편의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데 안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돌아보면 서로 힘들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날 이후 마음에서 진정 우러나지는 않았으나 남편에게 “고마워” “오늘 힘들었지?” “맛있게 먹어!” 와 같은 말을 건넸다. 처음에 남편은 듣고도 별 반응이 없어 정말 멋없고 센스 없다고 속으로 욕도 했다.




하루 이틀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딸 J에게 굿나잇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J야~ 잘 자! 엄마가 사랑해~”

“네. 엄마~엄마도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사랑해!”

“아빠! 아빠도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사랑해”

“응 그래~J도 잘 자~사랑해~ J엄마도 잘 자. 사랑해!”


잘못 들었을까? 나는 바로 대답이 안 나왔다. 그러고는 “잘 자”라고만 짧게 답했다.


오랜만에 남편에게 들어보는 단어였다.

서로 사랑하지만 이제는 말로는 건네지 않는 사이. 조금 눈물이 났었던 것 같다.


그저 짧은 말 한마디를 왜 마음에 담아두었을까?

상대방에게 말로 건네지는 순간 소중해진다. 힘이 난다. 따뜻해진다.


다음 날 저녁, 남편에게 내가 먼저 굿나잇 인사를 건넸다.


“오늘 고생했어~사랑해 남편!”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찔끔하고 따뜻한 눈물이 났을까?




*담다D가 밑줄 그은 문장*


무리인의 팔은 인간과 다르게 움직여서 신체언어가 서로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희진과 루이는 몇 가지의 동작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미안해, 고마워, 안녕. 이제 그런 말들을 나눌 수 있었다.

- 잘 자.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스펙트럼], 김초엽)



(Photo by Alex Ib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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