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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Aug 20. 2021

좋은 하루를 보낸다는 것



딸 J가  가득 책을 들고 낑낑대며 침대로 다.

그러면 나는 빠른 육퇴를 기원하며 차분한 ASMR 톤으로 읽어 내려간다.  권을 읽어준 뒤에도 잠이 안 오는지 이리저리 뒤척이다 이내 말을 건다.



J : 엄마~ 좋은 하루였지? 선사접토(천사점토)도 하고 공연도 하고!

: 그래~J랑 천사점토도 하고 공연도 볼 수 있어서 엄마도 좋은 하루였어!

J : 엄마! 내일도 즐겁게 놀자!

나 : 좋아! J가 일찍 일어나면 엄마가 아침에 책 많이 읽어줄게! 어서 자자! 우리 J 좋은 꿈 꿔!

J : 네, 엄마도 좋은 꿈 꿔!



네 살 J에게 좋은 하루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화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이어지면서 공동육아 중인 사촌언니 S와 만나도 오랜 시간 놀지 못한다. 더구나 어린이집도 가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보니 어른도 힘들지만 아이들에게도 참 힘든 날들다.


오늘은 모처럼 사촌언니 S와 만나 함께 점토놀이도 하고 장난감 피아노를 치며 공연도 했다.

한 번씩 투닥거리긴 했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J는 좋았던 거다.

한편으로는 온종일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인 것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J에게 엄마도 좋은 하루였다고 대답하고는 스스로 되묻는다.


'정말 좋은 하루였니?'


'글쎄... 고단한 하루였지. 그렇다고 안 좋은 하루도 아닌. J에게 좋은 하루였다면 나도 좋은. 그런 하루겠지.'


'그렇다면 나에게 좋은 하루란 어떤 의미일까?'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엔 딱히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강연자의 말이 떠올랐다.



“슬프지 않았던 모든 날들이
행복한 날들인 거예요.”



"오늘 아침 현관문을 나간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 저녁. 그렇게 잠드는 밤, 그런 날들, 하루하루, 매일매일, 그런 상태가 행복한 날들인 거예요.” (출처: 유튜브 세바시 강연, 1388회)



슬프지 않은 하루가 행복한 날이라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모두가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자체 당연한 것이라 여겼기에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오늘 슬펐는지 생각해보니 슬프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 오늘은 나에게 행복한 하루, 좋은 하루였던 거다.


밥하고 빨래하고 딸의 뒤치다꺼리하며 보낸 하루의 끝에서 좋은 하루였다는 J의 말 한마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비극적인 참사였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생존자인 산만 언니의 한마디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하루'가 '아무 일도 없는 행복한 하루'라 걸 가슴 저리도록 느끼게 해 준다.


좋은 하루를 보냈다는 것은 오늘 하루 행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 어제와 비슷한 하루일지라도 그게 행복이고 말이다.


J에게, 남편에게, 나에게 좋은 하루의 의미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저녁이면 모두가 무사히 집에 돌아와 있으니 우리는 좋은 하루를 보낸 것이다. 또한 슬프지 않으니 행복한 것이다.


사촌언니와 함께한 점토놀이에서, 아내가 저녁으로 시켜준 마라탕 한 그릇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이 밤 시간 누리며 좋은 하루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말자고 내어본다.


마음 한 편에서는 이런 소리도 들린다.

좋은 하루란 언니와 점토놀이를 하고 공연을 하는 것이라고 똑 부러지게 표현하는 J를 보며, 엄마로서 슬프지 않아서 좋은 하루다는 콧노래 저절로 는 걸 보니 좋은 하루였다고 똑 부러지게 표현할 수 있는 매일매일을 살자라고 말이다.




(Photo by Hybri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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