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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의 불안과 존재통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by 윤슬

나는 뭐 하나 고민되는 일이 있거나 해결되지 않은 생각이 있으면 그게 명쾌해질 때까지 죽어라 파고드는 스타일인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괴롭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너무 고통스러워서 일하다 말고 뛰쳐나갈 뻔했다...


내 머릿속을 온 종일 괴롭힌 질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답도 없는 질문인데, 사실 이건 진짜 답을 몰라서라기보다 답을 아는데 실천할 방도가 없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때문에 가장 괴로웠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올바른 삶은 생태적으로 사는 삶이고, 자급자족 하는 삶이다. 여타 지구 생명체들이 그렇듯, 자연에 기대어서 사는 삶이 인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 5월, 귀촌을 해 본 결과 할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친구도 없는 귀촌은 그냥 고독사의 지름길임을 깨달았으며,

올해 7~8월 일본에 가서 길을 찾으려 해 본 결과 인간은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모든 순간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꿈을 품고 갔던 농촌에서 나는 외로움과 무력함을 얻었고, 차가 없으면 발이 묶이는 농촌 생활은 너무나도 갑갑했다. 생태적인 삶과 현실의 농촌은 거리가 멀었으며 적막한 시골 생활은 나와 맞지 않았다. 눈 감으면 지네가 물고 갈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산골짜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 뒤로 나는 산골 농촌이라면 아주 학을 뗐다. 만약 오로지 전답과 차도만이 존재하는 허허벌판에서 축사의 소똥냄새를 맡아야 하는 게 시골이라면 그런 시골은 사양하고 싶다.


오키나와 바다는 정말 좋았다. 단순히 사람이 적은 동네를 시골이라 부른다면 시골도 시골 나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노래를 불러도 들을 사람 하나 없고,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보이는 섬 생활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노동 착취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 안하고 놀기만 하면서 살라고 했으면 평생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을 거다.


내가 바다를 좋아해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두 공간의 가장 큰 차이는 활력이었다. 오키나와는 사람은 없어도 활력이 있었는데 해남은 사람도 활력도 없었다.


나는 사람도 활력도 너무 부족한 공간은 맞지 않았고, 시내와 접근성이 떨어지는 공간도 맞지 않았다. 전업농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그닥 끌리지도 않았으며 나는 방치농을 하고 싶었다. 자연농 밭을 만들어 놓고 알아서 자라면 수확만 하는 거다. 농사는 내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반농반X 방식의 삶을 원했다. 내가 자꾸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옷이야 한 번 사서 오래 입으면 되고, 집이야 한 번 구해서 계속 살면 되지만 식사는 한 번만 한다고 평생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매 순간 우리의 고정지출이 되는 게 바로 식비인데 하루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 결국 입에 풀칠하기 위해 돈을 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후위기가 발생하면 의생활과 주거의 문제보다도 식생활이 가장 먼저 위협받을 확률이 높다. 건물이야 이미 인공 건물에서 살고, 옷이야 이미 합성 섬유로 입지만 먹는 것은 지금도 자연에서 온 것들이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임금 노동에 끌려다니는 이유도 먹고 살기 위해서고,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것도 아마 먹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말은 즉, 먹을 것만 자급해도 굶어 죽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돈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영역을 돈 없이 자립해 버리면 이 염병할 구직난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야말로 재테크, 주식, 비트코인, ETF, NFC, 강제된 노동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다. 심지어 자연은 감자 10개를 심으면 100개를 돌려주는 미친 인심을 지녔다. 농사야말로 투자 대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종목인데, 이는 거저먹는 삶보다 은혜로운 삶에 가깝다.

딱히 부정의하게 얻은 불로소득이나 양도 수익도 아니고 그냥, 원래, 자연은 베풀어주는 특성을 가졌으며 인간은 그런 자연의 넉넉함에 기대어 사는 게 이 세상의 이치이므로.


아무튼 식량만 자립해도 삶의 큰 걱정은 덜 수 있기 때문에 농사는 필수였다. 하지만 그게 전업농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논과 밭 뿐인 한국의 단조로운 시골은 재미가 없다! (feat.도파민 중독)


나는 빌딩 숲과 산호 숲 사이를 적당히 오가면서 반은 도시적이고 반은 자연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무언가 뜻이 맞는 사람들과 작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꾸미고 싶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에 기여하고자 웰니스 힐링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의 웰니스 힐링 마을 상품은 철저하게 상품화되어서 하루 이틀 요양하는 데에 몇십만원을 턱턱 낼 정도의 귀부인이 아니면 접근하기도 힘들다. 유기농도 자연도 부자의 특권이 되었다.

오히려 유기농과 자연이야말로 가장 투입이 적은데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던 것이므로 무엇보다 서민적이어야 하는 게 맞는데, 유기농 마케팅의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본래의 목적에서 지나치게 벗어나 버린 실정이다.


나는 사람들의 건강을 담보로 남겨먹는 장사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그걸 충분히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웰니스 힐링 마을은

1. 누구나 와서 머물다 갈 수 있는 열린 게스트하우스 -나는 이걸 여행자의 방이라고 부른다-

2. 자연농 텃밭에서 막 수확한 제철 먹거리로 만드는 채식 다이닝

3.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레저/ 다이빙

세가지를 결합해 종합 자연 테라피 관광 코스를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이걸 목표로 속초, 부산, 제주를 놓고 돈이 모이는 대로 매물이 싼 곳으로 이주하자며 다짐했다. 그렇게 잠시 자급자족의 꿈을 접고 도시 생활자이자 직장인........ (a.k.a 월급노예) 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프리랜서로 살고 싶었는데 당장은 경력도 기술도 부족했다.


이왕 월급노예로 살 거 오타쿠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뼛속부터 개 10타쿠였기 때문이다.


일평생 네다씹(네 다음 씹덕)과 그뭔씹(그게 뭔데 씹덕아)의 씹덕을 담당하며 살았다. 나에게 있어 덕질 없는 삶은 삶이 아니었다. 인간은 늘 우상을 만들고 이상을 그리며 현실에 없는 이데아를 숭상한다. 그렇게 인간은 신화와 종교를 만들고 이야기를 창조했다. 심지어는 과학도 인간이 만들어 낸 '완벽한 분석적 미'에 해당한다 볼 수 있으므로 가히 종교적이다. 난 예수쟁이들이 종교를 믿고 기술쟁이들이 과학을 믿을 때 오빠쟁이가 되어 투디오빠와 쓰리디 오빠를 숭배했다. 특히나 투디 오빠는 나를 배신하는 일이 없었고, 그 갸륵한 순애에 홀라당 넘어가 기꺼이 투디 오빠의 개가 되기를 자처했다.


마음껏 투디 오빠들이 저들끼리 사랑하든 나를 두고 사랑을 속삭이든 하는 걸 구경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타쿠 회사에 이력서를 난사했고 운 좋게 (어쩌면 운 나쁘게) 얻어 걸려 이 경기 불황을 뚫고 입사에 성공했다. 사무직같은 건 죽어도 못할 거라 생각해 일찌감치 포기했던 나로서는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왜 직장인이 되기를 거부했는지 자꾸만 떠오르는 직장 생활에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자고, 원하는 시간에 밥을 먹고, 원하는 시간에 운동을 하며 원하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올해 초 연말정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일이 너무 탄력적으로 집중되어 있어서 머리가 뜨거울 지경이었고, 휴식이 절실했다. 온 몸이 아팠고 소화 불량으로 먹은 것을 전혀 흡수하지도 못했다.

지금 하는 일은 노동 강도가 그렇게 빡세지 않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하루종일 한 자리에 앉아서 일 하려니 온 몸에 독소가 축적되는 듯한 불쾌함을 느꼈다. 접힌 고관절이 신경 쓰였고, 눌리는 햄스트링, 중둔근, 대둔근이 신경 쓰였다. 종일 앉아있으니 허리도 아팠으므로 척추 기립근 운동이 마려웠고, 어깨가 말리는 게 신경 쓰여 광배와 승모근 운동이 절실했다. 그냥 운동이 하고 싶었다. 제발 날 풀어 줘... 직장이란 침팬지를 목줄에 묶어두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그렇다고 수영 강사를 할 때는 자유로웠냐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이 작은 수영장에 갇혀서 몇 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그 나름대로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도 그나마 운동을 많이 할 수 있고, 아이들이 귀엽다는 장점이라도 있지. 이건 계속 모니터나 들여다 보고 있어야 하니 눈 건강도 망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눈 건강 조져가며 읽고 있는 소설은 웬 초등학생도 안 틀릴 법한 맞춤법을 틀려대는 한심한 텍스트 정크푸드였다. 별 같잖은 맞춤법을 틀려대는 원고 꼬라지를 보고 있자면 한숨과 비명이 절로 나왔다. 맞춤법만 틀리면 모르겠는데, 내용도 그지같아서 방구석 찐따의 하렘 망상이라는 누군가의 내밀한 욕구를 알게 된 불쾌함에 속이 메스꺼웠다. 필력이라도 좋으면 그러려니 해 줄텐데 문장력도 묘사도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만큼 저급했다.


내가 이러려고 살아 있나? 이런 저급한 유해 매체나 유통하자고 인생을 그토록 고통 속에 몸부림 치며 살아 왔던가? 현타 제대로 맞은 나머지 울고 싶었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닐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나마 계약직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가,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여기에서 나가면, 그 다음엔 뭐 하지?


사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게임 학원비를 충당하려 입사한 것이었으므로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이직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이게 보통 쉬운 게 아니어야지. 문창과도, 국문과도, 영화과도 아니면서 나는 글 쓰는 게 좋다는 이유 하나로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했으며, 시나리오 기획은 자료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과연 이직을 할 수는 있는 걸까. 비싼 학원비 주고 그냥 자기 만족에 그칠 것이 두려웠다. 아니, 사실 그친대도 별 불만 없었다. 학원 수업은 즐거웠고, 나는 어디서도 살아남을 기획서 작성법을 익히고 있으니. 1인 개발을 하더라도 시작은 기획이니 배워서 나쁠 건 없었으며 기획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 쓰면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런데 이놈의 돈이 꼭 문제였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부자가 되어 잘 살겠다는 것보다도 돈 없이도 잘 사는 법을 익히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너무 골치아픈 삶을 살아야 했으며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는 인생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돈은 뭐 어디 땅 파면 나오나. 누가 나에게 주지 않으면 벌 수 없었다. 돈을 버는 인생은 구걸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능력자인 것 같아도 실상 돈이 아니면 무능충으로 전락하는 게 부자다. 인생의 모든 부분을 소비로만 해결하는 삶은 지갑이 없으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돈 한 푼 없이 길을 나서면 물 한 모금 마시기도 힘들다. 이게 어디 주체적인 인간인가? 나는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고 나의 자유를 구가하고 싶었다. 그것은 돈과는 무관한 삶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 의사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국가 한국의 도시 한복판에 던져진 존재로 태어나고 말았다. 돈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충. 그게 바로 나였다. 당장 내 입에 들어가는 걸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돈을 구걸하기 위해서는 나를 증명해야 했고,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구조 속에 내던져졌다. 끊임없는 의심이 나를 옭아맸다. 이 세상에 과연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내가 알아 줄 정도의 능력이 있긴 한가? 앞서가지 않으면 뒤쳐진 것 같았고, 불경기, 고용불안정, 불황은 불안을 낳았다.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나는 직장을 옮겨야 하는가?

직장을 옮길 수 있는가?

직장이어야 하는가?

직장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지?

몸을 쓰고 싶은데 그냥 차라리 알바를 해야 하나?

알바는 누가 시켜 주나?

카페 일을 할까? 다시 수영을 할까? 인포데스크 정도는 취업할 수 있을까? 리셉션 정도는 할 수 있을까?

운동 마려운데 운동 처방사 되고 싶다. 물치과 나올 걸. 지금이라도 할 수 있나?

적당히 힘들지 않고 집 가까운 곳에서 워라밸을 챙기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좋은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은가?

아니, 잠깐만. 애초에 나는 직장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직장인을 못 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둘 다인 걸까?

돈벌고 돈쓰다 죽는 삶을 살고 싶은 건가? 그건 절대 아닌 것 같은데.

내 궁극적 목표는 자유인인데, 돈 없이 어디에 어떻게 정착해서 자유를 찾지?

내가 무슨 일을 해야 내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느낄까?

애초에 내 가치관에 맞는 일을 할 수는 있을까? 누가 시켜 주긴 하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2개월 뒤에 무엇을 해야 하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지?


물음표 살인마가 내 정신을 갈고리로 마구 휘갈겨 놓았다.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요. 이 세계에 대고 외치고 싶었다. 급기야 그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구도자처럼 떠나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선택의 기로에 매 순간 놓여있는데, 선택을 한다 해도 그걸 허락해 주는 주체가 따로 있었다. 결국 내 손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차피 내 손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고민한다고 해결 될 일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미래는 원래 불확실하고, 확실한 것은 현재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는 거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엉망진창 실패 투성이같아 보여도 결국 언젠가 변화의 시기는 오기 마련이다. 나는 이걸 코로나 때 겪어 봤다. 망가질대로 건강이 망가지고 나서야 나는 내가 입에 넣고 있던 먹거리를 다시 보게 되었고, 편입에 전부 실패하고 난 뒤에는 우연찮게도 자본주의 밖의 삶을 알게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자기계발과 경쟁 논리에 찌들어 있었고 늘 나를 혐오했으며 물질 문명을 찬양했는데,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고 채식을 하면서 거대한 우주관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딱딱 들어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자유인을 갈망하게 됐다.


세상은 본디 이타성에 기반하며 평화, 조화, 균형이 세상의 진리라는 걸 그 때 알았다. 모든 것은 이 우주의 일부이자 전부였다. 우주 전체의 거시적인 조화를 이룸과 동시에 각각의 개체 또한 그 자체로 조화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프랙탈 구조처럼. 그 조화를 깨는 존재는 업보 빔을 맞는 것이고, 그 조화에 따르는 존재는 안온한 삶을 누린다.


인류는 지금 조화를 처참하게 무너뜨린 죄로 단체 업보 빔을 맞고 있는 중이다. 제발 그만하자며 뛰쳐 나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여전히 주류 시스템은 늘 하던 대로다. 나는 주류 시스템을 보고 노예를 양산하는 파괴와 착취의 굴레라며 신랄하게 욕함과 동시에 빠져나올 구멍이 없어서 그 안에 꾸역 꾸역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한 마리 중생이다. 중도를 걸으라는 게 애매하게 걸치라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내가 착취를 일삼으면 결국 나에게도 업보가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세월 백인남성 우월주의 아래 지워진 자연-여성-동물의 욕구를 해방하고 기록하는 일을 내 소명으로 삼았다. 나는 적어도 이 가치관에 반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도시 생활자로서 주류 시스템 속에서 이 소명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이게 맞는 걸까? 내가 이렇게 살다가 벌 받는 건 아닐까? 나의 욕망이 세상을 해롭게 하는 일은 아닌지, 내가 벌어먹기 위해 하는 일이 세상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결국 나까지 불행해지는 건 아닌지. 그런 고민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정답은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다.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신-자연-은 믿는다. 내가 원하는 일이 정말 나의 일이라면 결국 언젠가 나에게 오겠지. 살다보면 뭣 같은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결국 선하게 살고,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오리라. 운명의 방향키는 나에게 있다. 하지만 도착한 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신이 정한다. 무엇이 있더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자. 다 나중에 쓸모가 있을 것이다. 가지더라도 자만하지 말자. 잃을지도 모른다. 잃더라도 슬퍼하지 말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른다.




무인도에 도착했는데 금괴가 있었다. 금괴를 배에 싣던 중 전부 빠뜨렸다. 빈손으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났다. 금괴가 실려있었다면 배가 가라앉을 수도 있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고,


무인도에 도착했는데 그물이 있었다. 보물이 있을 줄 알고 실망했다. 시험 삼아 그물을 바다에 던졌더니 황금어장이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당장의 일에 너무 감정소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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