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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AI로 책 좀 그만 내면 안 될까?

더 이상 인고하지 않는 사람들

by 윤슬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차내에 비치된 디스플레이에서 어떤 영상을 보았다.


AI로 책 만드는 법에 대해 광고하는 영상이었다.


영상에서는 도토리가 나무로 자라는 이야기를 만들겠다며 챗GPT에게 동화를 써달라 부탁하고, 그걸 복사해서 붙여 넣고는 글을 썼다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번엔 책 표지를 만들겠다며 이미지 생성형 AI프로그램을 켜고 명령어를 입력한다. 명령어에 따라 만들어진 이미지를 가져다 놓고선 그림을 그렸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는 말이었다.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그건 당신의 글도 아니고 당신의 그림도 아니다.


AI로 인해 도래한 것은 누구나 쉽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글과 그림을 도둑질할 수 있는 시대다.


그 책을 만들면서 당신이 스스로 한 건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기계가 만들어준 걸 복사한 정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책은 아무도 보고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색깔도, 매력도, 통찰이나 사유도 담겨 있지 않은 이야기는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렇게 해서 책을 낸 본인조차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절차탁마하면서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고, 글과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어진 것도 아니며, 실력 또한 향상시키지 못했다.


자신의 손과 머리로 무언가를 일궈내기 위한 경험조차 쌓지도 못하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고통과 희열조차 느낄 수 없다. 이걸 경험하고 느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런 식으로 책을 만들어봤자 그냥 남들이 평생동안 머리 싸매며 일구어놓은 결과물을 그럴듯하게 변형해 훔쳐간 당신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문장 쓰는 스킬, 플롯 짜는 방법, 필력 향상, 자신만의 문체, 세상에 대한 통찰력, 사물에 대한 관찰력, 그림 실력 등을 얻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작가라는 타이틀조차도 얻을 수 없다. 그 글의 진짜 저자는 챗GPT고, 일러레는 미드저니이기 때문이다. AI로 만들어 놓고 "내가 했다"고 말하는 건 허풍이다.




AI로 만든 책이 범람하면 서점의 신착 코너만 스팸 메일함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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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많은데 읽을 책은 없다. 쓰는 사람은 많고 읽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기 얘기만 떠들고 있는, 아무도 경청하고 싶지 않아할 SNS가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시장이 만들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은 챗GPT로 글을 쓸 때마다 한 줄에 7L씩 물을 낭비한 환경파괴자가 되기까지 한다.


생각해보면 AI의 기저는 남반구-북반구의 피착취-착취 관계와도 비슷하다. 북반구 사람들이 남반구 사람들의 고통과 노력을 구매 버튼 하나로 손쉽게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것처럼, AI를 사용하는 사람도 본인의 손으로 창작물을 만들어 낸 사람의 시간과 노력을 손쉽게 빨아먹고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이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말이다.


AI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이상 인고하지 않는다. 클릭만 하면 모든 것이 바로 이루어지길 원한다. 심지어 AI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생산성이 뒤처진 인간이며, 신기술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 도태된 인간으로 취급한다.

진짜 도태되는 인간은 AI 버튼이 없으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명심하자.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에 의해 이루어진다.



시간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은 시간이 알아봐주지만, 타인이 시간을 들여 이룩해 낸 것을 1초만에 도둑질 한 결과물은 시간이 지나면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그건 당신 안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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