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낳아준 엄마의 말은 기억에 없다.
나를 길러준 엄마의 말은 늘 내 귓전을 맴돌았다.
나도 아이 귓전에 맴돌 어떤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귀를 맴돌던 엄마의 말.
“너희 때문에 아빠랑 사는 거야.”
엄마는 친척집을 전전하던 나와 동생이 측은해서
아빠와의 결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신혼생활을 남편에게 딸린 두 딸과 함께 시작했으니
그 삶이 고단했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말을 들을 때 나는
아슬아슬한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았다.
또 버림받을지도, 우리 가족이 또 깨져버릴지 모를 살얼음.
그 살얼음을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
늘 엄마의 기분과 컨디션을 살피며,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딸이 되려 노력했다.
그러면 좀 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겠지.
어쩌면 인간답게 살고 싶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글을 쓰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들은 나에게서 어떤 말을 떠올릴까.
평온한 주말 아침,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한 말 중에 가장 떠오르는 말이 뭐야?”
긴 고민 없이 아들은
“사랑해.”라고 말한다.
“또 생각나는 건?”
“넌 할 수 있어. 넌 정말 멋진 아이야. ”
그렇다. 나는 어릴 적 내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에게 해주고 있다.
내게 목말랐던 말을 해주며 스스로도 채우고 있었다.
아이가 성장한 만큼 내 내면의 어린아이도 성장했다.
이제는 엄마의 말이 다르게 들려온다.
“너희 때문에 아빠와 사는 거야.”라는 말은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너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었구나.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제라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