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백수의 시골카페 창업기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카페를 창업한다. 이건 놀라운 일이다. 호들갑을 떨 만하다. 우선 카페 창업을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 아무리 초고속도 이런 경우는 없다. 게다가 평생 한 직장에 다니다가 정년퇴직했으니 장사 물정은 완전히 꽝이요, 부부 모두 환갑을 넘겼으니 순간적인 충동으로 객기를 부릴 나이도 아니다.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힘든데, 정작 우리 부부는 아주 멀쩡한 정신으로 내린 결정이다.
처음 시작은 열흘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은 점심을 먹을까 해서 새로 개업하는 순댓국집을 찾았는데 카페 사장이 앉아있다. 사연을 물으니 카페를 접고 업종 전환을 했단다. 그럼 카페는 어쩌냐고 했더니 그냥 비워놓고 기계를 빼서 나왔단다. 놀랍기는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에 다른 일로 이장님에게 들렀다. 용건을 마친 후에 이장님이 나에게 넌지시 아내가 경영했으면 한다는 제안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전하니, 일단은 난처한 표정이다.
https://youtu.be/neikmArR34g (돌담마을에 카페가 생겼어요. 2022.5월)
여기서 잠시 우리가 넘겨받기로 한 카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 강원도 산골짝보다 더 시골티 나는 전통마을이다. 느티나무 정자를 지나 마을로 접어들면 좁은 동네에 바글바글 50여 호가 모여 살고 있다. 옛날 집과 고풍스러운 돌담은 물론이고 우물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사극에 나올 법한 깡촌이다. 그런데 이런 마을에 2년 전에 카페가 생겼다. 사연인즉슨 마을 청년(그래봤자 60대)들의 사랑방 겸해서 카페를 열자고 마을회의에서 의견이 나왔고, 사람들이 공감하여 어찌어찌 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민 한 명을 선정해서 무상임대로 운영을 하게 했는데, 그 뜻은 훌륭했으나 막상 외딴 시골마을에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갑자기 내놓은 전임자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는 이유다.
마주 앉아서 부부회의를 시작했다. 우선 카페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차분히 꼽아봤다. 첫째는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작은 마을이고 어르신들이 비싼 커피를 드시지 않는다는 점, 면소재지가 가깝지만 인구가 3천 명 남짓의 작은 고장이고 몇 년 사이에 카페가 다섯 개나 생겼다는 점, 부부가 카페는커녕 장사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 은퇴 후에 누리고 있던 시간 여유가 없어진다는 점, 투자할 여유자금이 많지 않다는 점 등이 나왔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고생은 하는데 비해 돈이 벌릴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반면 긍정적인 면을 도출해 보았다. 우선 평생 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 임대료가 없는 데다가 연금으로 생활비가 충당되니 조금만 벌어도 버틸 수 있다는 점, 오래된 오디오 시스템과 레코드판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점, 10여 년을 야매 바리스타로 홈카페에서 커피를 볶고 마셨으니 커피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는 점 등이었다. 한 마디로 돈이 벌리지 않아도 괜찮으니 한 번 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마을카페가 비어서 문을 닫고 있는 상황도 고려가 됐다. 마을 회의에서 카페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협동조합까지 만든 주민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부부회의는 아주 짧고 간단하게 끝났다. 자칫 월급쟁이 경험만으로 생을 마감할 뻔했는데, 적은 비용에 사장 체험을 할 수 있으니 피할 이유가 없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어쩌면 잘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희망도 몽글몽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청주와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고 고속도로가 있으니 사실상 접근성은 나쁘지 않다, 시골마을 한가운데라는 입지가 도시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오래된 오디오 시스템과 레코드판으로 멋진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시골마을 카페창업 프로젝트는 아주 빠르게, 그리고 흥미롭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