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아침 8시에 출발, 비가 오락가락이라서 판초 우의를 꺼냈다 넣었다 반복한다. 비가 그쳤다. 멀리 언덕 위에 오래된 마을 하나가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그 마을 위로 쌍무지개가 또렷하다. 놀라운 광경이다. 어쩌면 저렇게 선명할까? 마치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무지개의 뿌리, 무지개와 땅이 맞닿은 곳을 눈으로 찾아본다. 마을 뒷산 소나무 숲 사이 어디쯤이다. 저곳에 오르면 무지개가 잡힐까?
무지개를 향해 걷는다. 햇살이 퍼지면 사라져 버릴 무지개는 어쩌면 빛과 물방울이 만들어 낸 환영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은퇴자의 삶을 시작하는 이 순간, 나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약속, 혹은 게시라고 믿고 싶다. 이제부터는 관찰자가 아니라 주인공으로,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네 맘대로 살아보라는 그런 게시 말이다.
순례 5일 차, 많이 가라앉았다. 외국여행이 주는 설렘, 중세 마을들을 지나며 느끼는 신비함, 걷는 행위가 주는 고통과 쾌감까지도 서서히 익숙해진다.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 없이 그냥 터벅터벅 걷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명상도 그렇다. 처음에 몸을 풀고 앉아서 호흡을 고른다. 코로 들어온 호흡을 단전까지 깊게 밀어 넣고, 아랫배를 약간 집어넣으며 천천히 내 쉰다. 이 동작을 열 번쯤 하고 나면 호흡이 느려지고 온 몸이 이완된다. 이제부터는 숨이 들고 나는 과정만 관찰한다. 코에서 단전으로 단전에서 코로, 다시 코에서 단전으로 단전에서 코로......,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내 호흡만 바라본다. 참 쉽다. 그런데 어렵다. 호흡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다. 명상이 아니라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은 결국 쓸데없는 생각을 끊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다. 뭔 생각이 그리 많은지, 앉아서 호흡을 하다 보면 별의별 잡념들이, 하다못해 수십 년 전의 잊었던 기억들까지도 꾸역꾸역 올라온다.
나는 여행이 자신을 괄호 밖에서 바라보는 좋은 기회라고 여긴다. 익숙한 환경, 일상에서 벗어나서 전혀 낯선 곳에 자신을 풀어놓으면,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생각들이 올라오기도 하고 풀리지 않던 인생의 문제들이 스스로 답을 내놓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쩌면 나를 통째로 괄호 밖으로 꺼내놓자는 의미였다.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기나긴 은퇴자의 삶을 시작하는 전환기, 살아왔던 삶의 연장이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방향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좀 오래 걷는다고 그 답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길을 걸으며 막연하게나마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것이다. 40일간 단조로운 길을 단조롭게 걷는 순례라는 여행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5일쯤 걷다 보니 엉뚱한, 사실은 내게 가장 절박했던 문제가 먼저 올라왔다. 바로 아들 문제.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들어와서 국가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두 번의 시험에서 모두 낙방했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부모 밑에 들어와서 취직도 아니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다가 두 번씩 낙방했으니 본인은 얼마나 힘이 들까 싶지만, 아빠인 나는 나대로 속상하고 힘들었다.
점심시간 무렵, 아스팔트 차도 옆으로 난 까미노를 걷던 중이었다. 옆으로는 가끔 차도 다니고 앞뒤로 순례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에서 느닷없이 아들 생각이,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에 대한 답이 쑥 올라왔다.
너는 너대로, 아들은 아들 대로,
모두 각자의 과정에 맞는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지어낸 생각인지, 누군가가 마음속에 속삭여 준 생각인지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 생각이 나를 강하게 감싸며 순간 눈물이 왈칵 솟는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모두 각자의 길을 순례자처럼 걷고 있구나. 내가 다른 순례자들의 걸음걸이를 걱정하지 않고 다른 순례자가 내 걸음걸이에 간섭하지 않듯이, 그저 서로 바라보고 응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만 도와주듯이, 아들과 나는 그렇게 같은 길을 따로 걷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내 길만 걸으면 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것이 야고보든 다른 영적 존재든 나 자신의 잠재의식이든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눈물이었다. 환갑이 다 된 녀석이 순례자들 속에서 갑자기 눈물이라도 흘린다면 얼마나 꼴불견일까?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두 번 눌러 앉혔다.
걷는 게 지루해질 무렵, 길가에 갑자기 예약한 숙소가 나타났다. 반갑다. 3층짜리 예쁘장한 호텔인데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다. 일단 깔끔하고 엘리베이터도 있는데다가 뷔페식도 훌륭하다. 며칠간 시골길만 걷다가 갑자기 문명세계로 돌아온 느낌이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저녁식사에 와인도 한 잔 했다.
뭔가 아쉬워서 어정거리는데 크리스틴이 휴게실에 혼자 앉아있다. 30대쯤으로 보이는 영국 여자인데 순례길에서 대충 인사를 나누고 아는 체하는 사이다. 밥 먹었냐? 어쩌고 물어보는데 안색이 안 좋다. 괜찮냐고 물으니 속이 꽉 막히고 소화가 안 된단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내가 좀 도와줄까? 내가 침 좀 놓거든”
“침? 너 그럼 의사야?”
“아니, 의사는 아니야. 자격증도 없어.
그런데 나 스스로와 가족에게는 가끔 놓지”
워낙 급했는지 아니면 자격증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는 몰라도 그리하란다. 어느새 독일 친구 조지도 지나다가 합석했다. 독일인이 보는 앞에서 영국 여자에게 한국 야매 침쟁이가 침을 놓게 된 것이다.
사관을 트고 두번째 와 세번째 발가락 뼈가 갈라지는 곳, 함곡에 침을 놓고 잠시 기다린다. 사실은 이 정도만해도 웬만한 위장문제는 안정이 된다. 여기에 공손, 내관, 임읍, 외관, 마지막으로 족삼리를 뚫어서 기운을 내린다.
이정도로 침을 놓고 15분 정도 기다리면 몸이 따뜻해지고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손과 발에 따뜻한 기운이 물처럼 흘러들어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머리카락보다 가늘다는 0.25mm의 침으로 몸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감사한 일이다. 주머니에 작은 침 몇 쌈 들고다니다가 소파에 앉아서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점은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절대로 따라 올 수 없는 장점이다.
내친김에 기 치료까지 보탰다. 환부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약간 띄워서 기운을 느끼면서 기운에 따라 정리를 한다. 기 치료는 기공 수련을 하면서 터득했는데 한 동안은 제법 기운도 강하고 치료효과도 좋았었다. 그러나 자칫 사이비로 찍히거나 불법 의료행위로 고발당할까 봐 한국에서는 여간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이 정도로 고발당하거나 사이비로 매장 당할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안색이 돌아오고 손도 따뜻해진다. 많이 좋아졌다면서 고마워한다. 말문이 터져서 얘기를 나눠보니 크리스틴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심리치료사란다. 기 치료에 대한 걸 묻더니 자신을 리딩(Reading)을 할 줄 안단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전문용어로 뭐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처음 듣는 단어에 워낙 빠른 영국식 영어가 귀에 들어 올 리 없다. 다시 물었다. 이번엔 좀 쉽게 설명한다. 뭔가 사람들의 심리상태, 혹은 영적인 상태를 읽어낸다는 뜻인 듯하다. 평범해 보이는 서양여자가 기치료와 비슷한 방법으로 리딩을 한다니 뜻밖이다. 호기심이 발동, 나를 리딩해 주겠냐고 하니 그러란다. 이번에는 위치가 뒤바뀌었다. 크리스틴이 시술자, 내가 피술자다. 눈을 감고 내 머리 위로 두 손으로 감싸듯 들고는 1-2분간 침묵한다. 미간을 찌푸리고 잔뜩 집중하는 게 뭔가 기운을 쓰는, 혹은 연결하는 눈치다. 조지도 신기한 듯 조용히 지켜본다.
리딩을 끝냈다. 나는 어떤 벽에 안전하게 보호되어 있단다. 안전하다는 말은 좋은데 벽이라는 말이 걸린다. 느낌이 이상해서 되물었다. 솔까말, 벽이라니 그건 무슨 뜻이냐? 내가 벽 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그러고도 싶은데 그냥 안전한 벽을 만들고 그 속에 머물고 있단다. 이래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내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용기를 못 내고 벽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헉, 들켰다.
나는 회사 동료들에게 약간 별종 인간으로 여겨져 왔다. 젊었을 때는 여차하면 상사에게 대들고, 회사에 이상한 생활한복을 입고 출근하다가 아예 방송 출연까지 하고, 명상이니 기 치료니 미신 같은 이상한 짓이나 하고, 노조니 협회니 나서서 들썩거리고......, 그러나 딱 거기 까지다. 이것저것 마음 가는 데로 움직여 보지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을 늘 가까운 거리에 두고는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노조, PD협회, 명상과 침술, 하다못해 취미로 시작했던 기타와 우크렐레, 오디오 바꿈질, 목공 어느 것 하나도 끝까지 가질 못했다. 어느 수준에 올라서 재미를 느낄 만하면 슬그머니 접거나 소홀히 한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건 바람일 뿐, 실제로는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혹은 PD로서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경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항상 그저 그런 PD중의 하나로, 커다란 성과도 별 잘못도 없이 그렇게 30여년을 보내고, 때가 되면 누구나 하는 정년퇴직을 맞은 것이다.
아내는 끈기가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나는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크리스틴의 말대로 벽을 벗어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두려움, 내 소심함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발육이 늦고 약골이었던 유년기일까? 외딴 과수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강아지, 두더지와 놀던 외로움일까? 아니면 부모님, 조상님들에게 받은 나의 유전인자일까? 아니, 남은 인생은 벽을 나와서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크리스틴의 리딩은 나에게 큰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순례를 하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