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정심 Nov 20. 2024

숨어있는 맛집이 있는 곳

『신동역』

  철도 노선도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런 기차역이 다 있었나 싶을 만큼 생소한 곳이 아직도 많다. 경부선 김천역 아래가 약목역, 약목역을 지나 왜관역, 그다음이 신동역이다. 칠곡이라는 지명은 익숙한데 칠곡군 지천면에 있는 신동역은 왠지 입에 착착 감기는 역명이 아니다. 1일 6회의 무궁화호가 정차하지만 아쉽게도 영주에서 신동까지 가는 기차는 없다. 신동에서 영주까지 오는 기차는 오전 5시 56분에 한 대가 있다.


  100킬로 남짓한 거리, 거리상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기차를 이용해 다녀오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승용차로 1시간 20분 소요. 아쉽지만 승용차를 이용해 신동역을 가보기로 마음먹는다. 늘 그렇듯 다이어리에 가보고 싶은 역으로 메모를 한 후, 몇 달이 지나서야 짬을 낸다. 이번에는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일당을 지급할 필요 없는 유용한 인력,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자칭 자원봉사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온종일 심심해할 남편 구제 차원에서 같이 가주는 거라고 큰소리친다. 물론 장거리 운전을 안 해도 되어 내심 좋으면서 말이다.

  

 신동역은 구석진 곳에 있지만 규모가 제법 크다. 역사(驛舍)만 봐서는 경부선의 모든 KTX가 정차를 하는 건가 싶다. 창문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니 신동역에서는 2021년부터 승차권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의 모양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많은 열차가 정차해야 어울릴듯한 신동역인데 매표창구조차 없는 역이라고 하니 씁쓸하다.    

 

                                            점과 선으로 이어져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가

                                            신동역 거기 그 자리

                                            아픈 네 사랑의 석류꽃

                                            그 자리 아직 네가 살고 있기에

                                            아픈 네 사랑의 석류알 같은

                                            알뜰한 그대 살고 있기에

                                            아네 사랑 타고 있네

                                            아네 사랑 타고 있었네     


  맞이방 벽면에 걸린 박해수 시인의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에 실린 「신동역」이라는 시다. 지금은 시 속의 ‘그대’가 탈 기차도 많지 않고, 애틋한 사랑을 기다리고 노래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의 신동역은 아니지만 역이 폐쇄되지 않고 존재한다는 자체로도 충분히 감탄할만한 일이 아닐까.


거리에 활짝 핀 목련꽃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다. 목련이 피어 거리를 밝게 비춘다. 잘은 모르지만 산목련인 듯싶다. 산목련 꽃은 일반 목련꽃과 다르게 활짝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이 환하게 미소 짓는 것처럼 꽃이 피어서인지는 몰라도 함박꽃나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거리 곳곳에 꽃이 피어있어 화사한 인상을 준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큰 동네다. 상가도 많고 왠지 모를 생기가 돈다. 이전에 다녔던 무인역이나 간이역 주변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무궁화호 6대가 다니는 지금의 신동역이 동네 상권에 영향을 줬을 리는 없을 것이고, 아마도 다른 원인이 있을 듯하여 주변을 살핀다. 위치를 알리는 안내표지에 ‘신리공단’이 보인다. ‘아, 이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호들갑을 떤다.


  “이거 맞지? 공단이 있어서 상가가 생기 있게 보이는 거 맞지?”

  “그래, 내 생각도 그러네.”

  남편도 내 의견에 동의한다. 무슨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공단 주위를 천천히 걷고 나서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 뭐 먹을래?”

  “글쎄…….”

  대답이 나오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물어본다.


  작은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안을 기웃거린다. 아마도 정식이나 보리밥이 전문인 듯하다. 검색하니 맛집이라고 하긴 하는데……. 검색 결과를 언제나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여기 그냥 들어갈까?”

  “너 가고 싶은 대로 가.”

  역시 또 괜히 물어보고 있는 나다. 대부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고 얘기하는 남편이다. 다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간다. 커 보이긴 하는데 식육식당이다. 가게 안을 보니 고기 메뉴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 갈래, 아니면 아까 처음에 거기 갈래?”

  “…….”

  이 식당과 저 식당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나는 전면전을 선포하는 지휘관이 된 듯 이야기한다.

  “오늘은 여기로 간다! 맛이 있고 없고는 먹어봐야 아는 거니까!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길 바라면서!”


  지휘관의 결정에 병사는 순순히 따라온다. 식당은 결정했는데 이번엔 또 메뉴가 문제다. 청국장을 주문하고 보니 다른 메뉴가 눈에 들어온다. 두루치기. 왠지 기사식당 같은 이미지의 이런 식당엔 두루치기가 맛있을 것 같다.

  “연우 아빠, 여기 두루치기가 맛있을 것 같지 않아?”

  “그래, 이런 식당은 두루치기도 잘할 거 같네.”

  침묵하던 남편이 메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여사님, 혹시 주문 변경해도 될까요? 청국장 말고 두루치기요!”

  “예, 가능해요. 두루치기로 2인분 드릴게요!”


  윤기가 도는 두루치기를 입 안에 넣는 순간, 고민 끝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간이 딱 맞고, 고기도 부드럽다. 두루치기와 같이 나온 솥밥도 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갖가지 반찬도 간이 딱 맞다. 정신없이 먹고 나서야 요일별 메뉴가 있음을 알았다. 월요일은 된장이나 청국장에 비빔밥, 화요일은 두루치기, 수요일은 함박스테이크나 생선(조림이나 탕), 목요일은 묵은지삼겹찜, 금요일은 탕요리, 토요일은 자유!


  ‘오늘은 토요일이니 아무거나 다 된다는 거였나?’ 계산할 때 물어보니 다른 요일에도 모든 메뉴가 다 되긴 되는데 점심시간에 공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려 요일별 메뉴를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시간도 단축되고 많은 사람이 빨리 먹고 시간에 맞춰 돌아갈 수 있다고. 대신 바쁜 시간에 요일별 메뉴를 주문하면 천 원씩 깎아준다고 한다. 손님들 대부분이 식당 사정에 맞춰 요일별 메뉴를 주문한다고 하니 탁월한 영업전략이 아닐 수 없다. 맛도 일품, 게다가 야채와 샐러드는 무한 리필인 식당, 나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간판을 돌아본다.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지는 가게 이름, ‘황학골 식육식당’이다.


쓸쓸한 신동역

  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쉽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사람이 좀 많았으면, 예전처럼 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했으면, 역사만 크게 지어놓지 말고 실속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신동역도 마찬가지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신동역이 마을의 상권 발달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는 날이 있기를 바라며 든든한 운전기사 아저씨와 삼성역으로 향한다.

작가의 이전글 영주댐에서 만날 수 있는 기차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