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 큰 기쁨이 가져온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변화의 물결
1980년대 말, 우리나라에는 본격적으로 마이카 붐이 일어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도로에 있는 자동차 수도 상당히 증가하게 되었다. 당시 1980년대 차량 수는 총 13만 대. 지금 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수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차량이라는 물건, 이동 수단 자체는 정말 비싼 중산층 이상들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수치도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도로에 차량들이 늘어나게 되자, 정부에서는 자동차 산업을 위해 직접 국민차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국민차란?
자동차의 보급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을 말함
89년 즈음 시작된 이 국민차 프로젝트는, 최종 사업자로 대우자동차가 아닌 당시 신설 법인이었던 대우조선 산하 대우국민차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GM과 5:5 지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GM의 입김을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동차회사가 필요했고, 그 이유에 따라 대우조선 산하의 대우국민차라는 신설 법인에서 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이러한 프로젝트를 대우자동차에서 진행하기 위해서는 GM과의 협의가 필요했는데, 어떻게 보면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이를 피하기 위해 단독법인을 내세운 것이었다. 대우자동차가 GM의 지분을 완전히 인수한 것은 대우국민차의 차량 출시 1년 후인 1992년으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대우국민차는 판매하던 차량이 경차였던 만큼 회사의 마스코트도 상당히 귀여운 토끼를 사용했는데, 지금 봐도 꽤나 귀여운 토끼인 것 같다.
현재는 대우 브랜드 자체가 폐기되어 아예 사용하지 않는 마스코트이지만, 지금 다시 사용해도 손색없을 마스코트 인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대우조선 차량사업부(이하 대우국민차)는 스즈키와의 협약으로 알토 3세대의 모델을 거의 그대로 들여오기로 했다. 당시 스즈키 알토는 지금 현재에도 그렇지만, 일본 경차 스테디셀러 중 하나였다.
당시 국민차 사업은 값싸고 성능이 나쁘지 않은 차량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판매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사업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우국민차는 차량을 개발하는 것보다, 잘 만들어진 차량을 들여와 조금 손을 본 후 판매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고 판단, 최종적으로 스즈키와 협약을 맺고 알토 3세대 모델을 들여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국민차 사업의 완성작으로 1991년 6월, 대우국민차는 국내에서 볼 수 없던 자동차 크기인 경차라는 새로운 크기의 차, 티코를 출시한다.
당시 티코는 출시 초반, 큰 차를 선호하던 한국 자동차 시장 특성상 상대적으로 덜 팔렸다. 현대 갤로퍼와 같은 SUV들이 혜성처럼 등장해 주를 이뤘고, 원래 해치백 느낌의 스타일보다는 세단이 많이 팔리는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특성상, 초반에는 그렇게까지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1991년 6월부터 12월까지 3만 1천대, 92년에는 5만 9천대를 판매했으나, 그게 다였다.
그래도 일반적인 차들에 비하면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이후 9월에 출시된 다마스, 라보와 함께 대우국민차를 이끌어 나가며 꽤나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1994년에는 기존에는 없던 여러 가지 편의장비들을 옵션으로 추가하여 조금 더 고급화된 페이스리프트 버전을 내놓았다. 이 때는 전기형 모델에 비해 확실히 조금 달라진 인상을 주었는데, 특히 후미에 장착된 스포일러는 티코의 콤팩트한 매력을 더욱 부각해 주었다.
휠캡 같은 경우, 같은 대우국민차의 차량이었던 다마스/라보와 함께 공유하였고, 풀옵션 차량 한정으로 알로이 휠이 적용되었다.
1996년, 이 티코가 우리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경차 규격의 제정 및 경차 혜택 제정이었다. 1996년 제정된 경차 규격은, 엔진 배기량 800cc 이하, 길이 3.5m, 폭 1.5m, 높이 2m 이하였다. 이 규격은 2007년 12월 31일까지 유지되었으며, 대우가 티코를 넘어서 마티즈까지 판매량 1위를 놓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1997년 IMF 외환위기, 한국의 경차에 대해서 논할 때 항상 빠질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고난의 4년이었지만, 경차들에게는 적어도 흑역사가 아닌 큰 기회이자 경쟁의 발판으로 작용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시기에 현대자동차도 늦은 경차시장 진입을 시도하였는데, 바로 아토스다.
아토스는 굉장히 톨보이 스타일의 경차로써 상당히 특이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었는데, 이러한 면이 굉장한 세일즈 포인트로 작용되어 98년 초 까지 상당한 판매량을 자랑했다.
출시 초기에는 상당한 판매량을 자랑했지만, 디자인적으로 봤을 때 껑충 뛰어오른 디자인이 분명했고, 인도 수출을 위해서 만들어진 차량을 경차 혜택이 제정된 대한민국에 그대로 판매한 차량이었기 때문에 판매 기간에 비례한 판매량은 생각보다 적었다.
경쟁 차량인 티코와 비교하였을 때 무거운 공차중량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여 98년 4월, 아직까지도 한국 경차의 전설로 남아있는 “그 차”가 등장 한 이후 판매량은 영 좋지 않았다.
경차 시장이 뜨거워지는 걸 대우도 짐작했는지, 1998년 티코의 후속모델을 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까지도 잘 알고 있는 마티즈다.
마티즈는 1998년 4월 1일 출시되었는데, 만우절에 출시한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 해에만 8만 대를 판매해 거짓말 같이 소나타와 아반떼 판매량을 모두 앞지르고 1998년 판매량 1등 차종이 되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은 이례적인 일이며, IMF의 여파가 그만큼 대단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티즈에는 티코에 들어간 헬리오스 F8C 엔진을 개량하여 M-TEC이라는 이름을 달고 얹었다. 티코에 비해 마력이 11마력 올라간 52마력을 자랑했다. 이 M-TEC 엔진도 꽤나 역사가 깊은 엔진인데, 전신은 헬리오스 F8C엔진이며, 이 엔진은 1991년에 처음 대우자동차의 엔진으로 편입되어 7년 뒤 1998년, 마티즈 출시 때 M-TEC으로 개량되어 한 차례 마력 상승을 거쳤다. 이후 다음 세대 모델인 올 뉴 마티즈까지 얹혀 M-TEC II라는 이름으로 한 차례 계량되어 탑재되었다.
다만, 이후 경차 기준이 개정되어 1,000cc로 올라감에 따라 M-TEC 은 더 이상 개량되지 않고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부터는 1.0L 급의 S-TEC 엔진이 얹혔고 대신 다마스, 라보에 LPGi로 개량되어 얹혀 2021년까지 생산되었다.
마티즈는 대우국민차 소속으로 판매되지는 않았는데, 당시 대우가 IMF의 여파로 계열사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우조선 산하에 있던 대우국민차를 대우자동차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티즈는 처음부터 대우자동차 소속으로 판매되었다. 이 전부터 판매되던 티코도 동일한 절차를 밟았다.
그렇게 마티즈는 등장하자마자 아토스를 골로 보내버렸고, 아토스는 마티즈 덕분에 판매량 급감 크리를 맞고 2002년 단종 때까지 존재감이 없었고, 그나마 터보를 장착한 모델을 판매했지만, 연비가 시궁창급으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토스가 단종된 후 현대는 2021년 캐스퍼가 출시될 때까지 대한민국 경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마티즈는 특수 한정판 모델도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마티즈 디아트(d’ARTS).
마티즈 디아트는 성능은 일반 마티즈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선루프가 존재하기도 했고, 그 당시 경차에는 상상할 수 없는 옵션이었던 에어백과 ABS가 무려 선택사양으로 탑재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월에 50대만 판매하는 한정판 모델로 판매하였으며, 현재는 잔존한 개체가 많이 없기에 꽤나 희귀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명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선생님이 5-6개월 정도 빌려서 운행하신 차량이 바로 이 마티즈 디아트 모델이다.
이후 마티즈도 2000년에 한 차례 페이스리프트 되어 마티즈 II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꽤나 성공적인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현재까지 회자되곤 하나, 당시 말이 많던 CVT 미션을 주력 미션으로 탑재하여 회사가 두 번이나 바뀌고 나서도 아직도 말이 나오는 전설의 모델로 회자되기도 한다. 차량의 상품성 자체는 CVT를 제외하면 엄청나게 좋은 모델이라, 현재까지도 중고 매물로 많이 보이기도 하고, 돌아다니는 차량들도 간간이 보이기도 한다.
1999년 ~ 2005년 사이 출시 된 마티즈 1, 2에 탑재된 E3 CVT는 아이기치기공이 만든 무단변속기인데, 660cc 미만 용으로 개발된 변속기를 GM대우 및 대우자동차가 결함을 인지하고도 그대로 때려 박아 넣었다.
이후 마티즈의 CVT 문제는 2010년에 발생한 인천대교 다중충돌 사건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당시 CVT 경고등이 점등된 상태에서 하이패스를 통과, 요금소 직원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직진하던 마티즈가 갓길이 아닌 1차로에 정차하여 뒤 따르던 버스가 회피를 하다 추락하는 참사가 발생,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가 되었다.
1999년에는 이러한 마티즈를 잡기 위해 현대에 인수된 기아에서 비스토가 등장했다. 당시 아토스에 비하면 꽤나 정립된 디자인, 좋은 상품성으로 마티즈를 위협했다.
마티즈와는 다르게 4 기통 입실론 엔진을 탑재하여 3 기통인 마티즈를 깠으며, 2000년식부터 자트코의 4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하여 3단/CVT 인 마티즈를 또 한 번 위협했다.
그러나 마티즈 특유의 귀여운 디자인은 판매량을 올리는 주 요소가 되었고, 마티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비스토는 마티즈에 밀려 콩라인을 유지하다가 2004년에 최종적으로 단종된다. 하지만 비스토 차량 자체는 광고도 인상 깊었고, 디자인도 아토스에 비해 꽤 괜찮은 명차임에 틀림이 없는 차량이다. 지금도 아토스에 비하면 중고차 가격이 조금 더 높은 양상을 띠고 있다.
그리고 마티즈는 98년 출시 이후로 약 10년 동안 경차 시장의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이후 2008년, 경차 규격이 개정되고 경차로 편입된 기아의 모닝과 본격적으로 경쟁한다.
글, 그림: 그림주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