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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창 Jan 07. 2024

아버지처럼만 살지 말자.

고속도로 한복판에 어머니를 두고 가다.

 가족들과 함께 지냈을 때, 항상 들어온 말이 있다. '너는 커서 아빠처럼은 되지 마라.' 아버지는 삶의 경험치가 부족한 내게 있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하고, 누군가 자신의 뜻을 부정하면 화부터 내고 본 사람이다.


 어릴 적 뒷좌석에 타고 지나치던 고속도로가 머릿속에서 선명하다. 할머니 집을 향할 때마다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와 다툼이 있었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단지 차멀미를 하는 내가 뒷자리에서, 눈을 뜰 때쯤 다툼은 극에 달해 있었다.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때, 요금을 청구하라는 안내양의 목소리와 함께 들린 음성은, 차에서 화를 내며 '내려'라고 소리치던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그는 갓길에 차를 세워, 어머니를 고속도로에 홀로 남기고는 떠났다. 몇 없는 5살 꼬마의 기억 속 한 장면이다. 그때 처음 알 수 있었다. 차가 다니는 고속도로에서도 중간에 사람이 정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절대적 권력자였기에 뒷자리에 타고 있던, 그 누구도 그것을 목격하고도 차마 뭐라 할 수 없었다. 20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어떻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집을 향했는지 말이다. 그 사건은 어머니에게 시간이 지나고도, 아름다웠던 추억으로는 회상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재를 즐겨라.'는 카르페디엠이라는 말도 어머니의 상황 앞에서 힘을 잃었다.  어머니는 이 순간을 내가 너무 어렸기에,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사족보행을 하던 순간은 더 이상 기억에 없어도,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부터는, 적어도 인상 깊은 장면들은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그때의 기억을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글만은 나의 가족들이 보지 않았으면 한다.      


 늘 생각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대단하다 생각되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는 고집불통의 아버지 곁을 30년 이상 함께 해왔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떠난 후 남겨질 세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버지 곁을 함께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버지와 최대한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괜찮은 어른이 될 것 같다는 희망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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