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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창 Jan 09. 2024

피는 속이지 못한다

거 봐요. 제가 해냈잖아요. 아버지

 술에 취해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을 먹었냐는, 안부인사도 건네기 전, 아버지는 다짜고짜 아들의 꿈을 짓밟았다. 


 "너 정말 직장 그만두고 게스트하우스 차릴 거야? 게스트하우스는 돈 벌어서, 놀러만 가라니깐 그게 언제까지 갈 것 같아. 아빠 봐. 돈 벌어서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 다니고 하잖아. 그냥 직장에 있어. 너 그러다 결혼도 못 해."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려다 참았다. 사실 나는 결혼에 대해 별반 생각이 없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오히려 내가 결혼하기를 바라는 건 아버지였다. 늦둥이로 태어났기에 내가 결혼의 시기를 늦출수록, 손주와 함께 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가족이 꿈을 짓밟는다는 것은, 그 어떤 사랑 노래보다도 구슬픈 음악이다.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영웅이 응원보다는, 등을 돌려 손가락 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아버지에게도 한 가지 꿈이 있다. 아버지의 꿈을 해외여행이다. 그것도 온 가족을 비행기에 태워 떠나는 해외여행 말이다. 그것이 영웅이 노쇠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다. 물론 비행기 좌석의 주인공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의 삶을 반추하여 보았을 때, 나의 결혼은 나의 꿈이 아닌, 아버지의 꿈에 가까웠다.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둘 중 어느 한 명은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의 꿈만을 생각하며 독단행동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 역시도 아버지의 꿈으로부터 내 꿈을 양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아버지와 어딘가 많이 닮아 있음을 말이다. 부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았지만, 고집투성이인 아버지만큼이나, 나 역시도 고집투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피는 속일 수 없었다.


 아버지와의 팽팽한 신경전에서 결코 물러날 수 없었다. 다른 건 다 져도 이 게임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사업도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찾는 일이다. 실패를 분석해, 실패를 줄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당당히 말하고 싶다. 


"거 봐요. 제가 해냈잖아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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