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한복판에 어머니를 두고 가다.
가족들과 함께 지냈을 때, 항상 들어온 말이 있다. '너는 커서 아빠처럼은 되지 마라.' 아버지는 삶의 경험치가 부족한 내게 있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하고, 누군가 자신의 뜻을 부정하면 화부터 내고 본 사람이다.
어릴 적 뒷좌석에 타고 지나치던 고속도로가 머릿속에서 선명하다. 할머니 집을 향할 때마다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와 다툼이 있었다. 이유는 알지 못한다. 단지 차멀미를 하는 내가 뒷자리에서, 눈을 뜰 때쯤 다툼은 극에 달해 있었다.
톨게이트를 통과했을 때, 요금을 청구하라는 안내양의 목소리와 함께 들린 음성은, 차에서 화를 내며 '내려'라고 소리치던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그는 갓길에 차를 세워, 어머니를 고속도로에 홀로 남기고는 떠났다. 몇 없는 5살 꼬마의 기억 속 한 장면이다. 그때 처음 알 수 있었다. 차가 다니는 고속도로에서도 중간에 사람이 정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절대적 권력자였기에 뒷자리에 타고 있던, 그 누구도 그것을 목격하고도 차마 뭐라 할 수 없었다. 20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어떻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집을 향했는지 말이다. 그 사건은 어머니에게 시간이 지나고도, 아름다웠던 추억으로는 회상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재를 즐겨라.'는 카르페디엠이라는 말도 어머니의 상황 앞에서 힘을 잃었다. 어머니는 이 순간을 내가 너무 어렸기에,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사족보행을 하던 순간은 더 이상 기억에 없어도,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부터는, 적어도 인상 깊은 장면들은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그때의 기억을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글만은 나의 가족들이 보지 않았으면 한다.
늘 생각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대단하다 생각되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는 고집불통의 아버지 곁을 30년 이상 함께 해왔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떠난 후 남겨질 세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버지 곁을 함께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버지와 최대한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괜찮은 어른이 될 것 같다는 희망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