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by 디어문
뭐가 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 원래 그래
우연찮게 시작됐다가
지나고 보면 꽤 좋은 것들이 있지.

-JTBC 드라마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대사 중에서-


드라마 '경로를 이탈했습니다.'에서는 결혼식장에서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다. 남편은 갑자기 가장이 되기가 겁이 나서 사라졌고 출가를 했다. 사라진 남편과 사위를 찾는 엄마와 딸은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미혼모의 불안한 삶을 살았던 엄마는 딸이 안전한 경로를 걸어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걱정이 부담이었던 딸은 엄마가 정해준 경로가 아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결혼도 딸에게는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비상문 같은 거였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로 가장이 된 엄마는 내가 안전한 길로만 가기를 바라셨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안정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엄마의 바람과 다르게 졸업 후 나는 내 커리어를 쌓을 만한 능력도 기회도 만들지 못했다. 드라마 속 딸이 지나치게 독립적이었다면, 나는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나태한 생각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소비하며 보냈던 20대, 가장 나에게 공을 들여야 할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겨우 만난 선택지는 부끄럽지만 적당한 조건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안주하는 것이었다. 긴 시간을 뒷바라지했음에도 어떤 결과물을 가져오지 못한 내게 지친 엄마도 어느 정도 부담을 덜 수 있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출발선부터 잘못된 결혼이었다. 결말이 좋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조차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극도의 우울감이 시작되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댁과 남편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시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내 일을 하며, 남편과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일이 그렇게 큰 욕심인 줄 몰랐다. 남들은 모두 자신과 가정 모두를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사는데, 나를 지우고 오로지 며느리로만 엄마로만 아내로만 살아야 하는 시간들. 왜 안되냐고 되묻지도 못했다. 육아 또한 온전한 내 몫이었기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그렇게 죽은 듯이 갇혀 지냈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드라마 속 경로 이탈은 새로운 삶을 가져다줬지만, 내 삶의 경로 이탈은 절망과 좌절뿐이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졌다.




점점 술을 찾게 되었고, 술에 의존하는 빈도가 늘어감을 인지하는 순간 두려워졌다.

못하게 한다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내가 내 일을 하는데 왜 허락을 받아야 할까.

결혼하고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내었다. 나를 놓아버리기에는 내가 너무 가여웠다. 아이들에게도 당당한 엄마이고 싶었다.


내 목소리를 내면서 남편과의 불화도 시댁과의 갈등도 깊어졌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이 되지 않는 남편은 극심한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시부모님은 자식처럼 며느리 또한 쥐락펴락 하셔야 되는 분들이셨다. 갈등이 심해지면서 폭언, 폭행... 비상식적인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론을 내려야 했다. 이혼이라는 장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혼, 재결합, 별거... 모든 선택지를 다 경험해 본 마지막 결론은 결국 관계 정리였고, 자신의 인생도 부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남편과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지내지 않고,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숨이 쉬어지고,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긴 시간 집 밖을 나오지 않던 나는 그렇게 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만나고, 당장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오랜 시간의 경력 단절, 이미 많아진 나이, 내세울 것 없는 스펙, 막막하고 암담했지만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남편과 한 공간에 사는 공포보다는 나을 것이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했기에 전공 관련 취업부터 찾아보았지만, 근무 조건은 열악하고 기회는 적었다. 조리사와 영양사를 겸업을 하거나, 유치원 두 곳의 일을 보아도 보수는 최저시급이었다. 그나마도 시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녔던 대학원에서 영양교사 자격증이라도 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양교사 채용을 알아보려고 교육청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다가 우연히 학교 기간제 채용을 발견했다. 기간은 짧지만 영양사 보수보다 더 받을 수 있었고, 학교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뭐든 할 수만 있으면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첫 재취업에 성공했다. 대기업이라도 들어간 듯 너무 기뻤다. 어디든 첫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은 죽어가던 내 삶에 활력이 되었고, 사라졌던 자신감을 찾아 주었다. 나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삶에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었다. 기간제 일이 끝나면 다시 일을 찾아야 했지만, 6개월 전보다는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할 수 있을까? 내게도 기회가 올까? 하는 망설임은 줄어들었다. 결혼해서 아이와 남편과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경로를 이탈함이 나의 경로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이 신기한 상황만으로 , 형벌 같던 아침에 희망이라는 빛이 조금씩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branch-gc4710137a_1280.png
겁도 많고 자존감이 바닥이었지만
뭐든 하니 달라지는 거 같아요.


남들과 같은 경로를 가는 것이
정답이 아닙니다.
사회적 시선보다
나의 시선이 더 소중합니다.

삶이 형벌 같다면
그 삶은 죽은 삶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