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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Jul 25. 2023

금주일지 5

금주 66일 _ 기록하는 즐거움

금주가 60일을 넘어가면서 시험에 드는 횟수가 줄고 있다. 시작할 때는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상태가 목표였는데, 절주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재취업이 늦어지면서 불안은 잠시 잊고 길어진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출근하게 되면 이 시간이 아쉬울 거니까. 시간이 날 때 하려고 미뤄두던 일들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갈대보다 쉽게 흔들리는 내가 금주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은 기록이었다. 대단한 성과물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해 노력한 매일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졌다. 마음만 있으면 5년, 10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의 기록을 읽어 보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기왕 하는 거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기록으로 검색하니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 난다.

5년 일기, 아침 일기, 감사 일기, 필사, 불렛저널?(처음에는 문구 브랜드인 줄 알았다.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게 맞는 듯.)

할 수 있는 몇 가지만 시작해 보자.



첫째, 아침 일기.

금주 때문에 시작한 일기,

아침에 실천하는 것을 간단히 적는다.

AM 6:10 기상, 날씨 흐림, 금주 66일 차, 신묘장구대다라니경 7독,


간단한 스트레칭과 명상 10분 30초

( 몸이 뻣뻣해서 마음만 열심히 하는 기분이지만 땀은 나니까.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문장을 옮겨 적는다. (요즘은 시크릿 속 문장들을 적는 중)


마지막으로 감사 일기를 쓴다.

처음에는 뭘 써야 할지 몰랐는데, 쓰다 보니 감사할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건강하게 시작하는 하루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생뚱맞게 뭉클해지기도 한다.

아침 일기는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다. 쓰기 위해 실천해야 하니까. 써 놓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음 날도 하게 된다.



둘째, 필사하기

책에 밑줄을 긋거나 책장을 접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시 보더라도 처음 보는 것처럼 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달만 지나도 기억이 희미해져서 읽은 책이 모두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필사를 해 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시작한 필사,

그냥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맥이 끊기는 게 싫어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표시하며 1 회독을 한다. 특히 좋은 부분만 노트 2페이지 분량으로 필사를 한다.


귀찮아서 한 번 해보고 안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빠르게 2 회독하는 느낌도 좋고, 필사할 문장을 찾는 것도 즐겁다. 사극에서 마음 수련을 위해 글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문장을 따라 적을 뿐인데 마음도 고요해진다. 명상하는 것처럼.


셋째, 일기 쓰기

아침 일기가 루틴을 기록하는 목적이라면, 저녁 일기는 하루를 정리하는 느낌이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짧게 한 두줄 적는다. 몇 년 만에 적는 일기인지...


특별한 일을 적기도 하고, 그날의 기분을 적기도 한다. 매년 같은 날의 일기를 한 페이지에 적는 5년 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년을 적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해보고 싶다.

1년 전 오늘의 사진만 봐도 뭉클해지는데, 5년 전 오늘을 읽는 기분은 어떨까. 여전히 불안할지 조금은 평안해졌을지 궁금하다.


넷째, 아침 하늘 기록하기

김신지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에서 매일 아침 하늘을 찍어서 기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에 한 번도 하늘을 보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적어도 한 번은 볼 수 있겠다.


어제오늘, 하늘 사진을 찍어봤다. 

마음도 함께 찍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늘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짧게 피드에 올렸다.


다섯째, 해보고 싶은 기록이 생겼다.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기록하면 좋을 것 같다. 아이가 어렸을 때 육아일기를 듯이.


아빠가 돌아가신 후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서 더 슬펐다. 인간의 기억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추억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특별할 것 없지만, 적어보니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하루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이가 선물해 준 만년필로 필사하려고 잉크도 찾아보고, 이 펜으로 추억을 기록하는 상상을 하니 설레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시작은 설렘을 주네요.



어릴 때 소풍 가면 보물 찾기를 했어요.

쉽게 살 수 있는 공책, 연필 같은 것들이었는데 보물이라고 적혀 있으니 괜히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행복도 찾아내지 않으면 모른 채 흘러가버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록을 하면서 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의도치 않게 자아성찰하는 횟수도 늘어나네요.


내가 불행했던 이유는

행복이 없는 게 아니라

찾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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