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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셀러리 Jan 07. 2022

영화 골라주는 아주 사적인 시선 : 5일의 마중  

장예모의 2015년 작품 

역사 앞에서 개인이란 


공리는 중국의 얼굴인 것 같다. 그 길고 긴 중국의 역사에서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그 특유의 모습들이 그녀의 얼굴에 담겨 있는 듯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모진 세월을 온몸으로 견디는 역할은 그녀가 아니었다면 어느 누구도 표현해내지 못했으리라. 영화 속에서 공리는 두 시간 동안 그 감정의 깊은 곳으로 관객들을 데려다주었다. 메이킹 필름을 보니 그녀 자신도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어려운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기억장애를 앓기 시작하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들은 정확한 기준을 세워야지만 연기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을 세우고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그녀가 이 역할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연륜 있는 대가의 모습에 배우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문화혁명이 최고의 광기에 다다를 즈음.. 국가에서는 사회의 최대 악인 지주, 지식인, 부르주아를 타파한다는 일념으로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감옥에 투옥되고 그 후 10년 뒤 문화혁명이 종결되자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부인은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오랜 기다림에 사무쳤는지.. 그녀는 주변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봐도 남편의 얼굴만 기억하지 못한다.

‘심인성 기억상실증’ 큰 충격에 따른 심리적 요인이라고 의사는 명명하지만 남편은 일시적일 거라며 그녀 주위를 지키며 보살핀다. 역에 미리 나가 있어 마중 나올 때 부인과 마주쳐 보기도 하고, 피아노 조율사로 분해 행복했던 결혼생활의 소중했던 기억을 상기시키려 하고, 편지를 읽어주며 애틋했던 마음을 전달하기도 하고,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면 기억이 돌아올까 싶어 예전에 자주 들려주던 피아노를 연주하고, 대학 동기를 만나 학창 시절 찍었던 옛 사진을 구해오기도 하고, 아내를 괴롭혔던 팡 씨를 찾아가 혼내주려 하기도 하고… 남편의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노력이 얼마나 애틋한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계속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며 그를 멀리한다. 영화 중간 즈음 남편은 “나를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고 편지 읽어주는 사람으로만 기억될까 봐” 더 이상 편지를 읽어주지 않는다는 말에 딸은 “엄마를 보살피는 것보다 더 이상 중요한 게 어디 있느냐” 라며 반문한다. 딸과 아버지의 이런 대화는 영화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사랑이란 서로를 이해하며 보살피고 같이 나누는 것인데 노년이 되어서까지 그 사랑의 의미를 몸소 실천해서 보여주는 모습이 애달프고, 가슴 아팠다. 어떤 게 더 중요하고 좋은지는 모르겠다. 이 가족은 둘 다 사랑이라는 큰 감정 앞에 역사도, 상처도, 가족도, 다 포용해버렸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금이야 그런 이념의 종착역인 현대에 살고 있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았더라면 과연 나는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난 문화혁명을 영화로 먼저 접했다.

<패왕별희>, <인생>, <산사나무 아래서>, <아이들의 왕>등등 영화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화가 났다. 그 역사의 소용돌이에 개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 한 개인의 삶은 그렇게 속절없이, 거대한 역사의 시류 앞에 멍들고, 찢기고, 어긋나 버렸다. 과연 남겨진 이들은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그 힘겨웠던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까? 이 영화가 그런 모습들을 한 개인에 비추어 담담히, 잔잔하게 그려내어 보여준 것 같다. 그녀 곁을 지키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역사의 아픔이 남겨진 많은 개개인들을 엿볼 수 있었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예전엔 이런 영화들을 보면 “이젠 좀 그만 좀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소재의 신선함도 없었고, 신파스러운 부분이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문제들을 회피하고 외면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너무 무거워 그 감정에 힘듦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회자되어야 하고,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거친 풍랑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인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격동의 역사 앞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숭고해질 수 있는지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 부인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다해 보살피는 남편 역의 배우 진도명의 연기뿐 아니라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부인 역을 맡은 공리의 연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깊은 여운과 감동을 선사해 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큰 감정의 동요 없이도 자연스럽게 슬픔과 애절함이 묻어나는 장면… 

한동안 하얀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이 오면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날 거 같다. 


Written by concub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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