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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셀러리 Mar 22. 2022

영화 골라주는 아주 사적인 시선 :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2016년 작 

유명 소설가인 사치오(모토키 마시히로)는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속물이다.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고민하며, 늘 가식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자기 합리화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 본인 닮은 아이를 낳는 것도 원치 않았고, 부인이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필명을 부르지 않고 본명을 불렀다며 화를 내곤 했다. 그런 그에게는 마음씨 착한 미용사 아내 나츠코(후카츠 에리)가 있다. 하지만 사치오는 자신의 어렵고 힘들었던 무명시절의 기억 때문에 아내의 응원과 뒷바라지가 있었던 모든 과거를 부정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부인은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며 어떻게든 맞춰주려 좋게 이야기하지만 남편은 그런 부인에게 조곤조곤 반박만 할 뿐이다.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부부의 관계는 이렇게 변해버렸다. 아내가 단짝 친구 유키(호리우치 케이코)와 함께한 여행길에서 버스사고로 죽게 되고 그는 덤덤할 뿐이다. 형사가 찾아와 이것저것 물었을 때 그녀와 함께 떠났던 친구 이름도, 마지막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여행 장소는 어디였는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눈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는 날. 같이 사고를 당했던 유키의 남편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로부터 전화가 온다. 똑같이 부인을 잃었지만 그는 사치오와는 다른 게 아내 ‘유키’를 기억한다. 아내가 평소 사용했던 특정물건, 자주 다녔던 특정 장소를 보면서 울고, 핸드폰에 녹음된 아내의 목소리를 몇 번이고 듣고, 울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지낸다. 요이치의 가족에게 호감을 느낀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 손이 필요한 그의 아이들을 돌봐주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기쁨을 느낀다. 그런 후에야 자신의 무심함에 상처 입었을 아내의 아픔을 조금씩 깨닫는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우연히 발견한 아내의 유품 속에서 요이치 가족과 함께한 피크닉 사진을 보게 된다. 그 사진 속에는 요이치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부인인 나츠코가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없었다. 아내는 해마다 친구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며 동행하지 못한 남편을 원망했는지도 모른다. 

<아주 긴 변명>은 국내 관객들에게도 인기를 모았던 <유레루>, <우리 의사 선생님>을 연출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2016년도 작품이다. 그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상이 어느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그날 아침 크게 싸우고 집을 나섰다든지 꼬인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한 사람들이 사고 이후 더 큰 후회를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고 한다. 남겨진 사람들의 깊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먼저 소설로 책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은 영화로 까지 이어져 완성되었다. 

영화는 부인을 잃은 두 남자의 간격을 느림과 관조의 미학으로 천천히 세밀하게 보여준다. 한 명은 너무나도 화목했던 가정에 남편의 모습, 다른 한 명은 소원해질 대로 소원해진 서늘한 부부에 남편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차갑고, 냉소적인 주인공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조용히 그려낸다. 아내가 곁에 있을 때는 아무런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함부로 대했다가 그녀가 떠난 후 비로소 알게 된 타인의 존재. 그는 처음으로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게 되고 , 인지하기 시작한다. 영화 후반에 이르러서야 힘들어하는 요이치의 아들에게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마라. 그렇게 하다 보면 내 주변에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거야.”라는 조언을 한다. 그리고 뭔가를 알았다는 듯 습작 노트에 적는다 ‘인생은 타인이다’라고

그는 그 깨달음의 먼 길을 우회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밟아갔다. 관객 입장에서 계속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날 것이다. 변명이 길어진다는 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건데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결국은 다 변명인데 왜 그걸 몰랐을까? 왜 부인을 잃은 후, 그리고 다른 대상인 요이치 가족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 걸까? 누군가 그랬다. 상실의 대가는 크다고 그 대가를 안 이후에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마지막 장면. 사치오의 새로운 책 출간을 기념하여 출판사에서 열어준 파티로 끝을 맺는다. 책 제목은 '아주 긴 변명'. 처음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주제로 출판사에서 책을 써보라고 제의가 왔을 때 그는 가족을 이용하는 거냐며 화를 냈고,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이젠 소중한 사람을 잃음으로써 얻은 깨달음을 세상 속에 책으로 내놓았다. 아주 길게 돌아온 변명의 끝에서 과연 그가 정말 깨달은 건 무엇이었을까? 


Written by concub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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