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인기가수 장범준은 2년 만에 개최하는 공연을 돌연 취소했다. 암표 때문이다. 그의 공연 티켓은 인터넷에서 예매를 시작한지 10분 만에 매진됐다. 그런데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을 겨냥한 암표 가격이 원래 티켓 가격인 5만 5,000원보다 3배 이상 치솟았다. 이를 보다 못한 가수와 주최 측에서 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공연 취소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공연뿐만이 아니다. 스포츠, 게임, 팬미팅 등 입장권이 필요한 인기 행사의 경우 의례히 비싼 값에 되파는 암표가 나돈다. 미리 표를 대량 구매한 세력들이 비싼 값에 암표를 파는 것이다. 이때 흔히 쓰이는 거래 수법이 ‘댈티’와 ‘아옮’이다. 댈티란 대리 티케팅, 아옮은 아이디 옮기기의 줄임말이다.
대리 티케팅(댈티)은 하늘의 별따기인 인기 입장권을 대신 구해주는 행위다. 아이디 옮기기(아옮)는 구매한 티켓을 제3자에게 넘기는 행위로, 대리 티케팅을 막기 위해 본인 확인 절차가 도입되자 등장한 신종수법이다. 두 가지 모두 정상적인 티켓 구매 행위에서 벗어난 편법 수단으로, 보통 전문업체들이 대신한다. 요즘 인기 입장권은 댈티와 아옮을 거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문업체들은 대리 티켓팅이든 아이디 옮기기든 편법 수단으로 입장권을 구할 때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자주 사용하는 여러 개 명령어를 묶어서 자판의 특정 버튼을 하나만 누르면 여러 가지 행위가 한꺼번에 처리되도록 만든 소프트웨어다. 보통 입장권을 예매하려면 인터파크, 예스24 등 티켓을 판매하는 특정 사이트에 접속해 이용자 번호(아이디)와 자동방지용 문자를 입력하는 로그인 절차를 거친 뒤 좌석을 선택하고 요금을 결제한다. 당연히 여러 번 마우스를 움직여야 하고 자판도 여러 번 두드려야 한다. 그런데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이 모든 절차를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한다. 쉽게 말해 엄청 빠른 속도로 선착순을 대행해 준다. 이런 식으로 공연 티켓의 30, 40% 이상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거친다.
심지어 대학교 수강신청 등에도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대학의 인기 강좌의 경우 학생이 몰리다보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강신청을 하기 힘들 수 있어 돈 주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매크로 프로그램 방지 솔루션을 개발한 에스티씨랩의 김하동 기술총괄(CTO)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 대학”이라며 “수강 신청의 70~90%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이어서 사실상 매크로 프로그램이 없으면 수강 신청을 못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봇, 즉 특정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로봇으로 본다. 김 CTO는 “매크로 프로그램은 봇이라고 부르는 반복적 업무를 자동화한 소프트웨어로 시작됐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는데 이를 입장권 예매 등에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사람이 정상적인 행위로는 로봇을 이길 수 없다. 매크로 프로그램이 차고 넘치면서 입장권 구매 행위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그러면서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률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김 CTO는 “전체 인터넷 트래픽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25%였는데 올해는 상반기에 벌써 30%로 증가했다”며 “사용 비중이 매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매크로 프로그램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매크로 프로그램 시장이 커지는 것은 인기 있는 일부 공연의 경우 입장권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이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을 관람한 사람 가운데 3명에 1명 꼴로 암표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구매한 암표의 보통 가격은 정가의 2배에서 5배 이르는 비싼 값이 거래된다.
2023년 내한한 가수 브루노 마스의 공연에서 정가보다 90배 비싼 1억 8,000만 원짜리 암표가 등장했다. 지난해 트로트 인기가수 임영웅 공연 역시 암표 가격이 정가의 30배에 이르는 500만 원에 형성됐다. 또 e스포츠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 암표도 정가인 24만 5,000원보다 10배 이상 비싼 300만 원에 팔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크로 프로그램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포털에 접속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검색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광고를 볼 수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도 진화해서 요즘 인기 있는 것은 셀레니움이라는 자동화 프로그램이다. 셀레니움은 인공지능(AI)처럼 매크로 내용을 미리 학습시킬 수 있다. 즉 골프장 예약이나 공연 예매처럼 특정 사이트에 익숙하도록 미리 학습시킨다. 이렇게 되면 특정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어느 위치에 있는 버튼을 몇 시에 누르라고 사전 학습을 시킬 수 있다. 접속 신호도 한 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1초에 100번 이상 보낼 수 있어 아무리 빨라야 1초에 두 번 이상 누르기 힘든 사람이 따라갈 수 없다. 이런 매크로 프로그램이 예매 사이트에 여러 개 달라붙어서 접속 신호를 대량으로 보내면 예매 사이트도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멈추고 만다.
물론 예매 사이트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셀레니움처럼 사전 학습한 매크로 프로그램의 이용을 막기 위해 홈페이지를 자주 바꾼다. 버튼 위치나 메뉴 위치 등을 옮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매크로 프로그램은 이를 새로 학습하거나 우회한다. 매크로 개발자들이 변경된 홈페이지를 우회하는 방법을 새로 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회기능까지 갖춘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한 암표는 부르는 게 값이다. 구하기 힘든 표일수록 나중에 매크로 프로그램 사업자가 성공 보수를 따로 받기도 한다. 성공 보수 역시 부르는 게 값이어서 암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분명한 것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표 판매가 불법이라는 점이다. 3월 21일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티켓을 구매해 판매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처럼 매크로 프로그램 규제가 시행되면서 개인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전문업체에 의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직접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티켓 취소나 환불을 받을 수 없고 적발되면 해당 계정으로 다시는 티켓 예매를 할 수 없다.
문제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기 행위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옮, 즉 아이디 옮기기다. 아옮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입한 암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못하도록 하자 등장했다. 요즘 행사업체들은 전문업자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구매한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팔지 못하도록 행사장에 입장할 때 구매자와 입장하는 사람이 같은지 신분증을 확인한다. 만약 다르면 입장할 수 없다. 여기에 지난 3월 21일 공연법이 개정돼 티켓을 제3자에게 넘기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 됐다.
이를 피하는 방법으로 등장한 아옮은 일단 매크로 프로그램 업자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표를 구매한다. 이후 사전 약속을 통해 이미 구매한 티켓을 취소함과 동시에 넘겨받을 사람이 취소된 티켓을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취소된 티켓을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있으니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매크로 프로그램 업자들은 이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원래 약속한 사람이 아닌 제3자에게 티켓을 비싸게 파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양쪽에서 돈을 받는다. 아옮으로 티켓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 사람은 고스란히 돈만 날리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정보까지 털려 아옮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매크로 프로그램 업자가 티켓 예매 사이트 아이디, 비밀번호,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까지 물어본 뒤 이를 다른 사람의 티켓을 구매해 줄 때 입력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제3자 아이디를 여러 개 활용하며 추적을 피한다. 또 가격이 올랐다며 추가로 돈을 요구하거나 아예 돈만 받고 잠적한다. 이런 수법으로 아옮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개설한 단체 채팅방을 이용하는 회원이 5,000명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이들의 피해액이 40억 원 이상일 것으로 본다.
결국 이런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각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제3자 명의로 된 아이디를 추적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며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워 피해구제를 받기 힘들다. 경찰에서도 암표 구입이라는 부정행위를 저지르다가 피해를 당한 경우여서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다르게 볼 수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이 기승을 부리면서 이를 찾아내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매크로 차단 프로그램은 보통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한다. 우선 정적 방식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수십 만개의 악성 IP와 접속 IP를 비교해 차단하는 것으로 일종의 블랙리스트 방식이다.
이와 함께 쓰이는 동적 방법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이상 행동을 찾아내 잡아낸다. 예를 들어 초당 수백 번 접속 신호를 보내거나 동일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경우다. 2차는 동적 분석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패턴을 분석한다. 한 번 요청 들어오면 이상하지 않은데 1초 안에 여러 번 요청이 들어온다든지 하면 이를 잡아낸다.
보안업체 에스티씨랩은 여러 가지 차단 솔루션을 운영한다. ‘넷퍼넬’은 대학 수강신청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탐지한다. 이렇게 이상 징후를 찾아내면 지난 3월 출시한 ‘앰버스터’라는 차단 솔루션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이 접속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앰버스터는 정적 방식만 사용하는 다른 차단 솔루션과 달리 동적 방식을 함께 사용한다.
신생기업(스타트업) 바요도 2024년 8월 26일 암표 거래를 차단하는 ‘티켓프렌즈’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아옮을 원천 차단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 서비스를 통해 사전 대기 등록을 하면 취소표가 발생할 경우 대기 순서에 따라 예약이 된다. 업체에 따르면 원터치 방식을 통해 복잡한 절차를 여러 번 거칠 필요 없이 한 번에 예매할 수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10억 분의 1초까지 정확하게 순서를 구분하는 초정밀 시스템을 자체 기술로 개발해 초당 2만 명이 몰리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탐지 솔루션과 함께 사람들의 인식 변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CTO는 “공연법이 개정돼 매크로 프로그램 예매를 규제하지만 일반인이 피해 사실을 문서나 자료를 확보해 증명하기 어렵다”며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구입한 티켓을 찾아내 무효화 하는 조치와 함께 공정한 문화를 도입하기 위한 사회적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 글은 KISO저널https://journal.kiso.or.kr/ 제56호 <이용자섹션>에 실린 최연진 한국일보 기자의 글('댈티'와 '아옮'을 아시나요 | KISO저널)을 재인용했습니다.
글 최연진
한국일보 기자
발행 KISO저널 제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