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 보호장치
몇 해 전 기침으로 고생하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나 장소와 상관없이 기침은 계속 나왔고, 해야 할 일을 방해하는 건 물론이고 나중에는 가슴과 허리까지 아팠다. 3개월 이상을 고생하며 작은 병원부터 종합병원까지, 호흡기내과부터 일반내과, 이비인후과까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잠들면서도 내일도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었다. 완치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던 의사 선생님의 말도 2개월 정도가 지나자 나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3개월이 지나갈 무렵 이비인후과만 전문으로 하는 규모 있는 병원을 찾게 되었고, 원인으로 의심되는 부분을 치료하면서 서서히 나아지게 되었다. 증상이 사라지면서 내 불안감은 함께 사라졌고, 굳이 떠올리지 않는 한 힘들었던 그때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달 전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다행히 발열 외에 증상은 심하지 않았고 3~4일 정도가 지나자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모든 상태가 정상이 되고 자가격리가 해지된 이후에도 잔기침은 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19의 흔한 후유증이 기침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려 했지만, 그 기간이 2주일이 넘어가자 내 안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몇 해 전 기침으로 몹시 고생했던 그때였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이 트리거가 돼서 그때처럼 잔기침이 계속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불안감은 그때 힘들었던 나의 몸 상태, 마음 상태를 상기시켰고, 뒤이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들을 떠오르게 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만나는 아이들이 부모의 부부싸움에 노출된 아이들이다. 그중에 한 아이는 부모가 싸움을 시작하려는 낌새만 보여도 과하게 불안감을 느꼈다. 부부싸움이 불안감을 야기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싸우고 나면 사이가 영영 회복되지 않아서 이혼을 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는 듯 보였다. 나는 어떤 이유로 부모의 이혼을 확신하는지 물었고, 그 아이는 부모가 다투는 모습은 정말 자주 봤지만 화해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다툼 후에 화해가 있을 거라는 예측 혹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 아이는 부모가 싸울 때마다 이혼을 떠올렸고 그래서 불안했던 것이다. 그 아이의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치지 않는 비, 끝날 기미가 없는 무더위, 가망 없는 질병 등은 불안감을 넘어 마치 두려움이지 않은가. 그 아이에게 부모가 화해하는 장면을 봤던 단 하나의 기억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아이의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람은 자력으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회복되었던 기억이 필요하다. 큰 고통이 있었지만 결국 회복되었던 기억, 일명 보호 기억이 필요하다. 고통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고통을 떠오르게 할 것이다. 그때와 똑같이 혹은 더 고통스러울 거라고 확신하게 만들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떠올려야 한다. 나를 도와주었던 누군가,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되었던 우연, 훌륭하게 대처했던 내 능력, 해결하지 못했으나 아예 망하지 않았던 나의 삶 등등. 고통이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았던 기억을 더 많이 품고 살아야 한다.
다행히 내 기침은 3주를 넘어가기 전에 그쳤다. 하지만 여전히 내 삶에는 수많은 기침이 있고, 앞으로도 수많은 기침이 생길 것이다(안 그러길 매일 기도한다...). 그렇지만 회복도 함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고통과 회복이 반복되면 그게 바로 성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