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운 풀풀 Feb 23. 2023

자꾸 사라지는 머리끈 덕분에 알게 된 내 갈망

두 딸의 미술 수업이 마칠 때까지 1시간 30분이 남았다.

저녁에 먹은 자장면이 소화가 되지 않아 미술학원 근처를 걸었다.

걷다 보니 다이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 머리끈이 하나밖에 안보이던데."


다이소에서 파는 리본묶음의 머리끈이 터지지 않고 쫀쫀하다.

귀찮게 흘러내려 볼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옹골차게 묶어버리기에 딱이다.


다이소까지 걸어가는 길에 필라테스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학원 수업받는 동안 주 1회 50분 수업이라도 받으면 몸이 좀 시원할까 싶어 전화문의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은 개인레슨만 가능하고, 10회에 56만 원의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단다.

전화를 끊고 고민에 잠겼다.

"개인 필라테스 레슨.. 돈이 아깝진 않겠어?"

시간이 금인 워킹맘이기는 하지만 10분에 11,200원의 가치냐고 물었을 때는 물음표가 떴다.


다이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물건마다 붙은 1,000원 상표가 눈에 들어왔다.

사러 온 건 머리끈인데 괜히 문구류를 어슬렁거렸다.


캘리그래피용 뜯어 쓰는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2,000원이다.

매일 아침  필사 할 때마다 아이들이 쓰고 남은 이면지를 사용하는데, 여기에 필사하면 그럴듯하게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도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트 두 개를 냉큼 집어 들고 매장을 거닐었다.


미용코너에 들어서자 구입을 고려 중이던 파운데이션 팩트가 떠올랐다.

만약 팩트를 사용하려면 추가 퍼프가 필요할 텐데, 생각하며 퍼프 구경을 하다가 빗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아이들이 사용하는 빗은 친정아버지가 육 년 전 사준 이마트 브러시다. (난 머리를 빗지 않는다)

촌스러운 보라색이 산뜻한 1,000원 브러시를 손에 들었다.


미용코너 귀퉁이에 내가 찾던 머리끈이 걸려있었다.

진열된 머리끈이 다양하다.

며칠 전 아이들 머리핀을 골라주며 잠시 고민했던 내 머리핀이 떠올랐다.

이것저것 만지작 거리다가 평소 쓰던 자주색 리본머리끈을 두 세트 집어 들었다.

3개 1세트에 1,000원.


손에 든 물건이 많아지니 다시 고민이 됐다.


캘리그래피 노트 아니라 이면지도 괜찮은데.

지금 브러시 엄청 멀쩡한 데다 꼬리빗도 여러 갠데.


손에 든 노트와 브러시를 제자리에 걸어두고 머리끈 두 세트를 계산했다.

다이소를 나와 아이들 미술 학원 근처로 돌아오는데 필라테스 광고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나, 이제야
 내 몸을  예뻐해주고 싶은가 보다.


머리끈 사러 가다가 숨겨둔 내 갈망을 발견했다.


사도사도 없어지는 새로 산 머리끈을 만지작거렸다.


이 머리끈으로 머리카락 질끈 묶고 열심히 걸어야지.

집에 있는 브러시로 내 머리카락도 하루 한 번은 빗어줘야지.



자꾸 없어지는 머리끈은

내 몸을 좀 챙겨달라는 내 무의식의 신호였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바닥의 먼지를 닦다가 길어 올린 열세 살의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