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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Jun 19. 2023

존재가 부서질만한 고통이었다는 착각

[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을 읽다가


최근 직장 동료와 드러나지 않는 갈등(어쩌면 혼자만의 내적 전쟁)으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자신의 '착함과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자격지심을 느낄만한 사람을 깎아내리는 행동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상태였다.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려는데 생각이 가시처럼 박힌 채 사라지지 않는 상태였다.


오늘 아침, [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는 구절을 만났다.

 

우리의 성격은 우리가 경험한 모든 상실의 잔여물을 함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상실의 기록을, 특히 대체 불가능한 것을 대체하려고 했던 고통스러운 시도의 내력을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성격이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복잡한 성격을 갖는 경향이 있다. 부서져야 할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운 것이다.


(성격은 우리의 상실의 기록을 내포하고 있다는 문장에 마음이 시렸다.)


그렇다.

우리는 욕망을 상실하고 기대를 상실하며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커 가는 과정은 '상실의 고통으로 인한 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마지막 두 문장에서는  (5장의 마지막이기도 하다) 갑자기 그 직장동료가 떠올랐다. 

작년 다른 직장동료들의 마음을 사고, 자신의 공적인 실수를 사적인 감정(동정심)으로 무마하기 위해 자신의 슬픈 과거를 들먹이며 '불쌍함, 측은함'으로 모든 일을 덮으려 했던 그 사람이다.

(사건 이후 그녀의 서사를 들은 다른 직장 선배님이 "조 선생, 그냥 불쌍한 사람이려니 해. 불쌍해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하셨다.)


그 사람은 '내 인생은 부서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부서지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웠어. 난 이런 사람이야.'라는 틀에 갇혀있었다. 

그래서 이해하려야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가진 거다.

좋게 이야기해서 복잡한 성격인거지, 그냥 독특하고 따라가기 어려운 사고방식(저 세상 화법)의 소유자다.


책의 두 문장을 읽고 그녀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었다.

그 사람은 부서진 자신의 인생에서 부서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근원적인 욕망을 죄악시하며 그렇지 않은 대상을 바라볼 때 판단하고 잣대질하다가 끝내 해결하지 못한 욕망을 엉뚱한 자격지심으로 표출하고,

가지고 싶지만 끝내 가질 수 없음을 인정하지 못한 괴로움을 그럴 듯 해 보이는 상대의 허점을 찾는 방식으로 자신을 세워나갔다.

그 화법은 워낙 고상해서 가만히 들으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이구나"하다가 뒤돌아서서 "이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이거 저 사람한테 하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괜히 그녀의 자격지심 대상을 바라보면 대화가 불편해지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쓰면서도 안드로메다로 문장이 날아가는 듯 하구만.)


난 부서지지 않고 살았어. 난 의로운 사람이야. 날 인정해 줘!


그녀의 주체할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은밀한 욕망 때문에 나는 이리도 그녀가 불편한 거다.

'그녀 다움'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나 또한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에 (아직은 뭔지 모르겠다. 보고 싶지 않은 걸 지도) 이리도 불편한 거겠지?


아무튼.

책을 읽고 그 사람의 생각을 떠올렸다가 다시 질문했다.


부서질만한 고통이었다면 부서지고 다시 싹을 틔우면 되는 건데.
왜 구태여 부서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
어떤 쾌락을 놓고 싶지 않은 걸까?
부서질만한 고통을 당한 희생자의 달콤함?
부서지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실의 거부? 



부서져야 할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내 인생을 괴롭게 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면...


부서져야 할 만한 이유라고 받아들여진다면 그간 내가 버텨온 삶의 사고를 부숴버리고, 다시 단단한 사고를 쌓아 올리기 시작하면 된다. 부서져야 할 만한 나만의 특별한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내려놓고,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특별한 고통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기가 쉽지만, 사실은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삶의 비슷한 고통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평안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성장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난 그 직장동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의 확장을 이렇게도 도와주다니.


아무쪼록 그 사람이 가진 "부서져야 할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운 나의 특별함"을 그냥 그대로 봐주되, "그러니까 날 인정해 줘, 바라봐줘"의 욕망은 그 사람의 것으로 고이 돌려드려야겠다.


아.

글을 쓰며 나에 대해 또 생각한다.


나도..

인정받고 싶은 건가?


뭐가 됐든

오늘도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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