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운 풀풀 Jul 22. 2023

교실을 죽이는 불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며칠 전 거짓말 같은 비보를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교실 뒤편 창고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2년 차 선생님의 소식.

선생님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시기까지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누군가는 "뭐 그깟 일로?"라고 할지 모르겠다.

안 겪어보면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며, 아이들이 교실을 나간 후에도 아이들 생각(사랑인지 교육인지 수업인지 모를)에 미소 짓고 한숨짓는 일과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아이들의 뒤에 서 있는 부모님이 대뜸 찾아오거나 갑작스럽게 전화하여, 나도 들어보지 못한 일을 끄집어내어 화인지 협박인지 모를 이야기를 30분 이상 쏟아내는데 "네, 네."라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하기 어려운 좌절감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본다는 느낌에 직장 근처 마트도 그냥 가기 어려운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뭐 이것 말고도 교사가 겪는 고충은 교사의 수보다 많다. (한 명의 교사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겪을 일임을 고려한다면..)


'상대가 뭐라 생각하든 나는 나지 뭐.'라는 자기 사랑 또는 뻔뻔함으로 중무장하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교사 집단 안에서 교사들 간의 갈등이야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만, 학생들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개인의 가치관보다 더 큰 사회의 가치관과 규칙들을 먼저 고려해야 함을 본능적인 직업정신으로 함양하고 있는 교사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교육 내용(여기에는 비교과내용도 포함된다)을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더 발전적인 방법을 모색하여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학급을 만들기 위해 힘쓴다.

교사의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라 비중을 두는 부분이 다를 수 있지만, 인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규범(타인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와 같은)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교사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교사 양성 과정이나 교사를 대상으로 한 직무연수는 교사에게 공교육의 방향성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이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예술에 가깝다.

기계로 찍어내듯 인풋과 아웃풋이 딱 떨어지는 과정이 아니라는 의미다.

학생들과 교사는 서로 인풋을 주고받고, 예상 밖의 아웃풋으로 함께 성장한다.

교사 한 사람이 이끌어가는 과정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교실 안의 문화를 만든다.

그렇기에 한 학급에서 1년 간 일어나는 일들은 예술에 가깝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바로 서로 간의 불신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발전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으면, 학생이 교사의 선한 의도를 신뢰하지 않으면 학급 안에서 긍정적인 상호작용은 일어나기가 어렵다.

"이 아이는 원래 이렇지, 그냥 포기해야겠어"란 학생을 향한 교사의 불신.

"우리 선생님은 날 미워해,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지"란 교사를 향한 학생의 불신.

불신이 자리 잡은 교실은 안전하지 못한 교실이다.


그리고 이 불신의 뒤에는 학부모가 있다.

"애들은 자연스럽게 크는 거지. 부모인 내가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지"란 부모의 방임.

"우리 아이는 특별한데 선생님이 몰라주는걸?"이란 부모의 특권의식.

"우리 선생님이 내 아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이거 차별이야"란 부모의 확대 해석.

다양한 이유들로 부모와 학교의 유기체적인 관계가 깨어지면 이는 불신으로 이어진다.


...


어떤 말이 필요할까.

어떤 이유를 붙들어야 할까.


부디 꽃보다 아름다운 선생님의 일생이 억울함으로 끝나지 않기를.

아무것도 아닌 일개 초등교사에 불과한 나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보태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한 나라의 선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