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3주 2일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지나가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숨 가쁘게 지나간다. 수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은 아이들이 수월하게 넘겼고, 그저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내 숨이 헐떡이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한 일
1. 등하교
입학 후 3일이 지나고 쌍둥이 두 딸은 혼자서 등교하고 싶다고 했다. 많은 배려로 얻어낸 육아휴직 2개월이라 그 기간만이라도 배웅을 하고 싶었기에 속으로 많이 서운했다. 괜히 학교 코 앞에 집을 얻었나 후회도 살짝 되었다.
"그래도 엄마가 한 달은 데려다줄게. 횡단보도 길 건너는 게 익숙해질 때까지는 안 돼."
아이들에게는 본인들을 위하는 듯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조금만 더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해 줘'라는 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2. 인사
아이들이 짝꿍과 함께 인사를 하고 지낸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인지라 낯선 친구들과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클래스메이트를 친구라 여기며 서로서로 인사하고 탐색을 했다. 짝에게 색연필도 빌려주고, 선생님에게 주의를 받은 짝꿍을 걱정하기도 하며 자기들만의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초등 저학년은 클래스메이트를 탐색하는 시기이기에 아이가 잘하겠거니 마음으로 믿으며 날 다독이는 중이다.
3. 준비물
아이들이 알림장에 귀를 기울인다. 딸들이 다니는 학교는 알림장을 쓰지 않고 학교홈페이지를 이용해 확인한다. 그래서 알림장이 다소 긴 편인데, 아이들이 수시로 챙겨 물으며 준비물을 매일 챙긴다. 준비물이라고 해야 물통, 필통, 우체통, 읽을 책으로 매일 챙겨가는 리스트이지만 매일 챙겨보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기에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도 잘 챙겨주는 편이라 나도 마음이 흐뭇하다. 딸이라 그렇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냥 걱정 많고 생각이 많은 아이들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생각보다 숨 가쁜 일
1. 주양육자의 아침
난 주양육자다. 육아의 대부분 아니 모든 일을 내가 주도적으로 실시한다. 그렇기에 나의 행동에 아이가 영향을 많이 받기에 아이보다 내가 더 바싹 긴장한 채 아침을 시작한다.
우선 아무리 늦어도 5시 55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6시에 영어 DVD 소리로 아이들을 깨우려면 5분 전에는 일어나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 한다. 그리고 곧장 아이들 방에 불을 켜고 아침을 준비한다. 요리 못하는 나에게는 아침식사메뉴를 고르는 일도 버거워서 일주일 식단을 정해두고 싱크대에 붙여두었다. 생각 없이 계란프라이를 만들어 밥 위에 얹어 간장을 뿌린다. 뭉그적거리는 아이들의 몸을 일으키고 30분 타이머를 맞춘 후 "이 시간까지 밥 다 먹고 양치, 세수해야 해"라고 엄포를 놓는다. 유치원 등원 때는 오히려 밥을 대충 먹어도 시간 되면 치워버렸는데, 초등학교는 간식도 없이 몇 시간을 버텨야 하는 걸 알기에 요즘 더 아침식사량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엄마의 신경이 더해지면 엄마의 날도 곤두서는 법. 어르고 달래다 화를 내며 아이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는 매일이다. 그러고 서둘러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나오면 7시 10분. 이 시간부터 연산 한 장, 받아쓰기 한 바닥, 교과수학 한 장, 책 5분 읽기를 시작한다. 이 시간에 해두지 않으면 방과 후에 놀 시간이 줄어드는 걸 알기에 아이들도 이 시간에 어떻게든 끝내보려 한다. 그렇게 서둘러 뭔가를 하고 나면 7시 50분. 옷을 입고, 물통을 챙겨 집을 나선다.
학교에 가는 건 아이들인데, 아이들보다 내가 더 숨 가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들쭉이며 내 마음을 어떻게든 눌러가며 해야 하기에 몸에 사리를 만들며 하루하루 보내는 중이다.
2. 주 양육자의 오후 5시 이후의 일과
내가 오후 5시로 잡은 이유는 단순하다. 복직 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각이 5시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사실 무척 빠듯하기는 하지만 아이 저학년 때는 어떻게든 이 시간을 맞춰보고자 노력할 예정이다.
오후 5시 이후에는 할 일이 있다. 샤워, 저녁 식사, 영어 집중 듣기 1시간, 잠자리 독서, 놀기. 간단히 시간으로 나누면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샤워와 저녁식사시간을 타이트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얼렁뚱땅 두 시간이 흐르고, 집중 듣기를 저녁 7시가 훌쩍 넘어서 해 버리면 끝나는 시각이 9시가 다 되어가기에 지옥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저녁 7시 20분 전에 집중 듣기를 끝내기 위해 저녁 6시 언저리에는 집중 듣기를 꼭 시작하려고 노력하는데, 이건 나 혼자 발바닥에 땀 맺히며 이마 끝이 쭈뼛 서도록 달리는 기분이다. 여기에 "더 놀 거야, 엄마는 화만 내, 하기 싫어, 졸려, 책 안 읽어, 엄마는 안 놀아 주고" 등 투정과 어리광을 넘어서는 분이 섞인 아이의 목소리에 엄마 죄책감은 원 플러스 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과를 해내야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기에 어떻게든 해내려 3주째 노력 중이다.
3. 나의 시간
어찌 보면 내 시간이 참 많은 듯한데 정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유튜브 알고리즘만 따라다니다가 아이가 올 때쯤이면 피로감에 절어 썩은 생선 눈깔이 되고야 만다. 엄마들을 만나 브런치를 먹지도 않고, 매일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뛰지도 않는데 뭔 시간이 이리도 빨리 지나가는지. 짧디 짧은 오전 시간에 집안일을 해치우고 육아고민해결에 몰두하고 나면 24시간 중 나의 시간을 빼내기가 참으로 버겁다.
지금 나의 고민은?
그래서 지금 나의 고민은 뭐냐.
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하.
정말이다.
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단순히 한두 달 만에 잡힐 초등학교 1학년의 일과였다면 이런 고민도 이런 빡센 하루도 이런 글도 쓰지 않았을 테다. 직접 두 딸을 데리고 해 보니 이건 길게는 초중등 12년, 중간은 초등 6년, 짧게는 초등 3년은 해내야 할 일이다. 하루일과를 지금처럼 다 짜지는 못하더라도 12년 동안 아침밥은 잘 차려 먹여 보내야 할 게 아닌가. 그러려면 아이 등교 1시간 전에는 밥이 세팅이 되어있어야 할 테고. 그래야 든든히 먹고 갈 테니.
후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죽상을 하고 있으니 "대체 나는 왜 아침밥을 차릴 생각이 1도 없는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라는 근본적인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이를 따져 묻기에는 지금 당장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많고, 내가 우선에 두는 일들이 있기에 그 생각은 억지로 접어두었다.
그럼, 어쩔까.
일단 하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필요한 건 마인드 세팅.
결론이다. 나의 결론.
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을 마인드 세팅으로 바꿔버렸다.
이건 그냥 하는 일. 완수해 낸 나에게 도장을 콩.
여기에 성취감이나 보람 따위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그런 덕목을 올리면 다시 근원의 질문으로 쫓아갈 것을 알기에 그저 출근도장 찍고 월급 받는 것처럼, 오늘의 일을 완수했다고 마음에 도장을 콩 찍는 거다.
나의 하루 일과로 아이들이 잘 자라 멋진 인생을 살 것이라는 아주 큰 기대와 먼 미래의 희망을 품지는 않을 테다. 그러는 순간 이 모든 '그냥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빚으로 짐으로 던져질 것을 아니까.
초등학교 입학 3주 2일 차.
오늘 또 하루가 지나갔다.
세상의 모든 학부모님들, 존경합니다.
아가들아, 쑥쑥 잘 자라라.
나야, 오늘도 도장 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