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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곤 Jun 05. 2022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무제(Untitled)


형 '허상의 파괴자에서 가치의 수호자로'가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사회화가 됐어. 형은 '교대라는 왕국의 괴물'인데 뒤에 '가치의 수호자'라는 말은 왜 붙은 거야.




 예전에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어. 그날은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책을 읽고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날이었지. 참고로 <1984>는 '빅브라더'라는 거대한 세력과 빼앗긴 자유에 의문을 품는 '나'의 사투를 다룬 소설인데. 각자의 감상평을 나눌 때에는 빼앗긴 자유와 부당한 세력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지. 그 자리에 모인 대학생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지던 와중 잠자코 있던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당신들이 빅브라더라는 체계적인 시스템의 지배자라면 제 손으로 그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겠는가?"


 빼앗긴 자유에 대해 분개하던 2021년의 대학생들, 모두가 선망할 대학들을 다니는 그들 모두 선뜻 제 손으로 끊는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그 자리에서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한 학생도 있었지만 '당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데도?'라는 반문에 대답을 망설인 것을 보면 말이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라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질문을 던진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어. 진실이라는 것은 없어. 단지 어떤 것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과 입장만 있을 뿐.


  "내가 허상의 파괴자인지 혹은 가치의 수호자인지는 사과를 반으로 나누듯 정확하게 나누는 것이 아니야. 그냥 네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보는 풍경이 달라지듯이 말이야. 학교로 예로 들자면 이 학교라는 곳은 영원히 부당한 곳일 수밖에 없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 자유를 빼앗긴 코흘리개들이 책상에 앉아 몇 시간씩 앉아있게 하고 기본적인 생리작용도 마음대로 못하는 곳이니 말이야. 학교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을 텐데.

 

 학생이라면 그 부당함에 마음대로 침 뱉고 비난해도 괜찮지 왜냐하면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 아이들을 내보낸 건 바로 우리 어른들이니. 그러니깐 반항이라는 것은 원치 않는 등장에 대한 하나의 시위라고도 해석할 수 도 있어. 하지만 네가 선생이라는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부당함에 대한 시위로부터 학교라는 파괴되기 쉬운 구조물을 지켜내는 임무를 부여받는 것이지. 학교란 작은 질문에도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견고한 무언가가 아니야.


이 작은 종이 왕국을 불만 가득한 괴물들로부터…


 "내가 매거진의 이름을 <허상의 파괴자에서 가치의 수호자로>라고 지은 것은 이 두 가지가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 뒤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두 개의 큰 톱니바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우리들은 항상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지. 파괴자의 얼굴과 수호자의 얼굴, 그 둘이 쉴 새 없이 맞물리다 결국 그 끝엔 아마 수호자의 얼굴 이 한 가지만 남게 되겠지.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지면 결국엔 둘 중 하나의 얼굴만 남게 되어있어. 치기 어린 대학생이 체념에 젖은 중년이 되고, 천재는 결국 사회 속에 박제가 되어버리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파괴자와 수호자, 기득권과 비기득권


그림의 거인 골리앗의 머리를 자른 어린 다윗이 '승리자로서의 표정'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목이 잘린 채로 다윗의 한 손에 잡혀 있는 골리앗의 머리를 이상하리만치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어. 마치 목을 벨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원망하는 표정인 것 마냥 말이야. 놀랍게도 이 그림의 두 얼굴 모두 화가인 카라바조 자신의 젊은 시절과 중년 시절의 자화상이야.


 그런데 이 그림은 자기 스스로 이러한 파국을 초래했으며,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단 골리앗의 모습이 결국 자기 자신의 자화상이었던 것을 확인한 순간을 그린 그림이야. 파괴자에서 수호자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을, 그 무게감을 표정에 잘 녹여냈지.


사실 다윗과 골리앗, 다른 건 이름과 나이뿐 사실 둘은 별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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