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곡
삶 전체가 하나의 악보라면 인생은 정해진 주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조물주의 눈은 한 개인을 포착하자마자, 그들을 사로잡아 악보에 들어가도록 강요하며, 개인의 삶 일부는 특권적이고 의무적인 기간으로 지정돼, 그로부터 빛나는 가시적 형질을 선취하여, 이것을 악보 전반에 투여한다. 여기서 빛나는 주제란, 악보를 관할하는 마법이자, 내 인생의 지휘자에게만 가시적이며 자신에게는 돌아선 무언가다. 등 돌린 가시성에 대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주인을 자처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주제 아래의 한낱 개인은 충실한 연주자로서 절대자에 봉사하거나, 지나간 연주에 대해선 관람자로서 영원한 심포니에 압도당하게 된다.
한번 흘러간 물이 되돌아오지 않듯, 지나간 삶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악보의 가장 왼쪽 위엔 고립된 가시성 그 자체의 마디가 있다. 그 이후 펼쳐질 연주들은 이미 말해진 것에 관해선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첫마디와 비물질적으로 유사한 원근법적 선들이 가로지르는 이 악보에선, 동일한 구도, 동일한 갈등, 동일한 이미지가 영원의 공간을 따라 순차적으로 배치가 될 것이니깐 말이다.
그 이후 향연은 첫마디의 완벽한 분신이며 이들의 동일성을 부정하려는 그 순간마저도 부차적인 기교로 변주되며, 이로 인해 불가피해지는 동일성의 놀라움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하나의 주제에 의해 연주되는 것을 파악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단지 아직 연주되지 않은, 흐릿한 그 너머를 감지만 할 수 있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