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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곤 Oct 24. 2022

교대 안에 차린 술집

1. 술집 차린 넘

술집 차린 넘



 연극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극만 마무리된다면 여유를 찾을 줄 알았으나 여유란 게 쉽게 허락되진 않나 보다. 연극을 기획하기 이전부터 글을 쓰기로 결심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던 터라 쉽게 쓰일 줄 알았지만 쉽게 쓰이는 글이란 없다. 학교 앞에는 오래된 북카페가 있다. 아마 나이로 치자면 나보다 곱절은 더 먹은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치닫는 알싸한 커피 향과 수백 권의 책들이 절여지는 냄새에  나의 마음도 가라앉는다. 몇 발자국 나아가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삼아 테이블에 앉으면 수백, 수천 권의 지성의 무게에 압도됨을 느낀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우주이기에 애써 경외감을 숨길 필요도 없으며, 손님은 나 하나고 사장님 부부도 저녁 드시고 오신다며 나가신 지 오래다. '신들의 사회', '주원장', '항생제 사회'등의 제목에 스치는 시선을 통해 내용을 유추하다 보면 한 권의 책에서 눈길이 멈춘다. '이단자 이케이론'… 나의 마음은 멈춘 시선에 달려있으며 반대로 시선은 '이단자'라는 단어에 달려있다.



 여기 또 한 명의 이단아가 있다. 바로 N.H. 클라인바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다. 직전 연극에서 그를 연기했다. 극은 이렇다. 무대 위에 학생들, 키팅 선생님 그리고 교장, 그 셋은 나란히 서있다. 학생, 선생님, 그리고 교장은 나란히 배치된 세 점이다. 다만, 선생님이 서있는 모습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다들 앞을 볼 때 그만이 학생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몸은 돌아섰으며 학생과 반대편에 서있는 교장이 보게 되는 것은 그의 돌아선 등뿐이다. 더 많이 보려고, 더 많은 것을 말하기 위해 등 돌린 선생님은 학교와 학생 사이에서 그 관계가 끊임없이 발견되지도 확정되지도 못하게 막는다. 그렇게 비극은 시작된다.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키팅 선생님의 모든 대사는 작은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으며 자신이 보는 세상을 아이들 또한 봤으면 한다. 하지만 분명 안 가본 나라에 가보면 행복하다지만, 많이 보는 만큼 인생은 어지러울 뿐임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진 않았던 키팅이다. 극의 시작이 물음표였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에 가르친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와 꽂힌다. 역설적으로 물음표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었지만, 한 학생을 죽음으로 끌고 간 것 또한 질문이었다. 인간을 너무 사랑했기에 불을 훔쳐온 프로메테우스처럼 말이다. 갈등 끝에 결국 도려낸 것은 키팅이었으며 질문이었다. 그는 슬프고 아름답고 처연하기 짝이 없다.



 어린 시절,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며 매스꺼움을 삼킨 적이 있다. 아니 먼 곳도 아니었다. 소파에 앉아 책을 덮고는 불 켜진 화장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으니 말이다. 책은 한 바보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기가 똑똑하다 믿으며 부조리가 가득한 이 세상에 냉소를 던지는 바보 말이다. 그래 적당한 바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이들은 전형적인 특징을 가진다. 보이는 것 그 이상을 자꾸 보려고 하며, 자기가 본 것을 떠들어대려고 하는... 내 앞에 있는 것만을 보려고만 해도 단내 나는 일인데, 자꾸 땅속에 묻힌 전설을 보려고 한다. 지워지고 묻힌 건 그냥 놔두면 될 것을. 그러면 삶의 끝은 곱지 못하다. 한편으로, 사색에 잠기다 보면 뜻하지 않는 장면의 지나감을 경험한다. 교통사고를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한밤중 검은색 승용차에 의해 끝이 나는, 그런 엔딩을. 검은색 세단에 수백 번도 더 깔려봤다. 사람은 제 자신의 운명이 보일 때가 있나 보다. 이 세상엔 적당한 바보보단 충실한 일꾼이 필요함도 보인다. 그세상엔 적당한 바보의 자리는 없다. 머리를 얻어맞는 듯 멍하니 화장실을 보고 있는 나는 메스꺼움도 함께 느낀다, 형용하기 힘든 형태의 역겨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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