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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브 Oct 20. 2024

등장하는 사람이 주인공

등장과 퇴장의 타이밍

 

하루해가 짧아져 오후 5시는 금방 다가온다. 각자 프리랜서로 여러 일의 시작과 마무리가 서로 교차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다른 옆자리 B에게는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 알려주고 나선다.


 바로서기 연습을 시작으로 나도 이제부터는 모델이 된다.. 우리가 앉아있든, 서서 있든 바로서기는 몸을 바르게 펴고 배에 힘을 주고 가슴을 약간 내미는 자세다. 턱은 팽팽하게 당긴다. 옆에서 보면 엉덩이와 어깨 견갑골만이 벽에 닿는다. 바르게 펴는 것은 협착되어 눌러앉아버린 척추뼈와 경추를 늘여주는 것도 포함된다.

다음은 한발로 서서 버티기다. 한발 끝에 힘을 주고 다른 발을 들어 올린다. 숫자 스물을 셀 때까지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 20초를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뇌졸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보고가 있다. 나의 왼발이거나 오른발 중에 하나는 초반부터 버둥거린다. 균형이 흐트러지고 비뚤거리다가도 차차 안정적으로 서 있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한 발은 스물까지 셀 동안 미동 없이 버텨내는 것으로 나의 균형감각은 적어도 50점은 돼 보인다. 발을 구르고 무릎을 감싸 마사지를 해주는 것으로 워밍업이 끝난다. 이제부터는 워킹의 시간이다.


몇 박자의 워킹이든 시작은 발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워킹은 뻗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리는 힘으로 나간다. 들어 올리고 뻗고 내리는 네 박자 워킹에서 들어 올려 내리는 세 박자, 이 과정들이 실제 걸음에서  하나 둘을 반복하는 두 박자가 된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박자를 세면 지금까지의 무한대로 자유롭던 내 걸음걸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할 수가 있다.     

 

런웨이 동선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한 사람이 등장하고 퇴장할 타이밍에 두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수를 바꿔서 펼치기도 한다. 무대에 따라서 가장 역동적인 인적, 공간적 운영이 요구된다.

음악과 함께 런웨이 동선이 시작된다. BGM을 고르기 위해 오는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는 강사님 말씀에 조금 더 귀를 열고 음을 즐겨보리라 마음먹는다.


한 명이 워킹을 하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고 돌아서는 지점에서 두 명이 출발한다. 걷다가 서는 지점, 포즈지점을 떠올리며 순서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강사님의 목소리가 높게 울린다. 음악도 멈췄다.


"멈추지 마세요. 등장하는 사람이 주인공이에요. 앞사람이 안 나온다고 멈추면, 언제까지 양보만 할 거예요? “

미처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이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강사님의 말이 이어진다.


등장하려는데 앞사람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죠? 멈추면 안 돼요. 턴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해요. 이 3분을 위해 준비한 평생을 다 버릴 건가요? 들어오는 사람이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 

앞사람이 시간을 끌자, 들어오던 사람이 순간적으로 무대를 잃고 멈춰 서 버렸던 모양이다. 무대는 다양한 변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시간을 조절하면서 자기 순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사람을 탓하지 마라 “

”내 무대는 끝까지 내가 지켜 내야 한다 “

극한 예로 팔꿈치로 상대를 쳐내고 견제하면서 저기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모델들에게 주어진  3분 무대다. 우리 모델 연습생들은 웃으며 격려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두 시간을 유쾌하게 즐긴다. 그러나 우정은 우정이고, 모델은 무대를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은 엄중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한 번의 무대, 어쩌면 지나가 버릴 찰나의 시간, 그것이 내 삶이고 나 자신이다.     

  

음악도 멈추고 각자 돌아갈 시간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내 삶의 무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무대를 잘 지켜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 긴 꼬리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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