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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08. 2022

자아탐색일기 5: 가식

저는 가식적인 사람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나는 가식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이해받거나 드러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대충 평범하게 보이면 족하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겉과 속이 심하게 양분되어 있어 다른 사람이 나에 관해 묘사할 때 '아 저 사람은 나를 아예 모르는구나' 싶은 발언을 들을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이 때문인지, 거의 평생을 답답함을 느꼈다. 어디로든지 혼자 떠난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스스로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끼며 사는 걸까? 가족들이나 편한 친구들에게나는 시니컬하고 냉소적이고 시비털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자기 혐오적인, 그래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여진다.(애니어그램상 기질적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보통 사회적 가면을 쓸 때의 나는 잘 웃어주고 내 주장을 숨기고 잘 맞춰주고 혹시나 내가 잘못해서 상처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다. 

 이런 나의 행동 양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초등학교 시절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어서 반 안의 권력자에게 대들었다가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 나를 숨기고 무조건 주변에 맞추는 경향성은 이때부터 학습되어 온 생존 전략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은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진심이 아닌 나의 꾸며진 모습은 재미없고 매력없는 평면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와닿기 힘들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가 자기주장이 없다고 하면 기분이 나쁘게 느껴지니 말이다. 사실 이 모습은 따돌림당하던 초등학교 4학년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일 것이다. 상담 중에 나는 이러한 행동 양식을 가지게 된 이유를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에서도 나의 현재 모습이 그 시절에 고착되어 있는 생존 방법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과연 '척'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와닿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애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상담 중 이런 나의 방식이 어린시절 착각속에서 생겨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생존 전략임을 깨달았다. 아마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또한 나처럼 꼭 따돌림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겪은 여러 일들로 인해 생존하기 위한 방어책으로 그런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현재 상황에서 진짜로 생존하기에 유리한 전략일까? 과거가 우리의 족쇄가 되어 더이상 득 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낡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되는 걸까? 사실 나는 미움받을까 봐 두렵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의 공격성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고 내 공격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상처받게 된다면 또다시 그것이 나의 죄책감으로 이어져 내가 괴롭게 될 것이 두렵다. 이러한 부분들을 극복하려면 내 탓이 아닌 상황을 구별하고 공격성을 드러내도 되는 상황을 잘 판단하여 죄책감을 잘라내는 연습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내가 좀 더 단단해지려면 나의 마음에 집중해서 스스로를 살피고, 나를 드러내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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