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기구한 삶을 살았다고 표현했다. 2020년의 어느 날 내가 한창 입시 준비에 매달리고 있을 시기에, 그는 자살 시도를 했다.
그는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했다. 죄책감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결혼 전에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낙태했고, 아내의 경제적인 지원도 받게 되면서 떠밀리듯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결혼 이후 그가 아내에게 가지고 있던 죄책감을 무기로 그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는 아내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잘해보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그의 행보는 아내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잘못된 일임을 알았기에 그 수치심이 더욱 컸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아내는 이 사실을 알고 이혼을 통보했고 당장 다음날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그는 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수면제 100알을 삼켰다.
신기하게도 그는 나와 같은 교육대학 졸업생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인생의 많은 것들이 추측되었다. 그도 학창 시절을 모범적으로 보낸 우등생이었다. 당연히 집에서는 그에 대한 기대가 컸고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의 아버지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당신의 삶을 자식의 성공으로 보상받기를 원했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가 자신의 삶의 소망을 자식에게 떠넘기는 것은 자식에게 숨도 못 쉴 만큼의 부담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성공이 단지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자신과 어머니, 아버지 또는 집안 전체의 성공이 되니 말이다. 아버지의 시선으로 자신을 질책하고 책망하는데 익숙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수치심도 배로 깊어지게 된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자신을 무대 위에 올리기 가장 쉬운 환경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떳떳할 수 없게 하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 거대한 부담감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는 항상 뭐든 잘 해왔고 잘하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문제가 해결만 된다면... 수단은 별로 상관없었다. 남이 모른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무대 뒤의 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누군가가 알게 되었을 때 그 일은 배의 수치심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심리를 정말 절절히 이해한다. 나 또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도 비슷하게 부모의 기대를 떠안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내면화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삶은 성공자와 실패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다양한 사연과 소명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 부모의 시선을 세상의 시선으로 확대해 자신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기준에 맡겨버리는 일을 그만할 수 있도록, 이제는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기를 나와 그를 위해 간절히 바란다.
자살시도 이후 신속한 긴급조치덕에 겨우 살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의 일생을 '망한 인생'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망'에는 희망의 망이라는 의미 또한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상처투성이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한마디였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잘못했어도 지금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요. 이것은 항상 병리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 사람으로서 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당신이 잘못한 일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당신의 전부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한 아이가 그리워하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의 소중한 아들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똑똑하고 이렇게 저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당신의 좋은 것들이 당신에게 남아있는 것들이 아직 많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삶을 부족하고 못난 한 인간으로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