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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Oct 24. 2022

10. 학교폭력의 기억-'찐'의 고백

내 것이 되어버린 폭력의 마지막 조각

 체육 시간, 모두 손을 잡고 큰 원을 만들어야 하는 활동에서 아이들은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내 손이 더럽다고 했다. 내가 키우는 기니피그에서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자기들끼리 진행한 '반에서 가장 싫은 사람 투표'에 내가 꼽혔다. 

 나는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했다. 무려 7년간, 내가 다녔던 학교가 반이 바뀌지 않는 대안학교였기 때문에 학창 시절 내내 나는 혼자였다. 많은 일들을 겪어 왔지만 이 이야기를 마지막에 꺼내게 되는 것은 글쎄, 가정폭력이나 성추행 경험에 비하지 못할 정도로 나에게 큰 상처로 남았기 때문일까. 

 내가 따돌림 피해자가 된 것은 가해자의 잘못도 있지만 가정환경에도 큰 원인이 있다. 나는 굉장히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22살 때까지 휴대폰을 갖지 못했고, 집에 tv가 없었다. 내가 접할 수 있는 미디어는 마루에 놓인 컴퓨터뿐이었다. 미디어 노출이 양육에 해롭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춘기 시절에는 방문을 닫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 통금이 4시 반이었다. 반 친구들이 모두 인정할 정도로 무섭기로 유명한 우리 엄마에게 반항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난 아이돌을 좋아하거나 화장을 하는 주위 아이들을 경멸하고 가르치려 들면서도(엄마에게 그게 맞다고 배워 왔으므로), 본능적으로 그 속에 섞이고 싶어 하는 못생긴 여자아이로 자랐다. 그런 날 아이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나는 점점 스스로 고립되었다. 그런 내가 정말, 너무도 싫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면 금세 흔들리고 말았다. 모든 것이 엄마의 의견이었고 나 혼자 결정하고 실행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내가 내 기준을 세우지 못한, 이 혼돈 속에서 뭐라도 붙잡고 빠져나가고 싶어 기준과 규범, 도덕에 집착했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망망대해에 혼자 휩쓸리는 기분을 항상 느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살아 나를 괴롭혔다. 사람을 만나는 매 순간마다 스스로의 행동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방어하느라 급급했다. 따돌림을 당한 이유가 나한테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강하게 자기주장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잘난 척을 했나? 절대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므로 매 순간이 자책과 스스로에 대한 검열이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에 고착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들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울 리 없었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따돌림을 당하거나 이상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티를 내지 않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틀에 벗어나고 '보편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면... 내가 정말 세상과 동떨어지고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토할 것만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이상한,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 말들을 한다. 회로가 고장 나고 머릿속이 하얘지고 이 사람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지, 아니 분명 그럴 거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면서 숨이 막힌다.

 항상 칼날 위에 서있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거꾸러지는 좁은 길 위에서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주변을 살핀다. 뭔가 잘못되지는 않았겠지? 이상해 보이지 않겠지? 나를 다시 칼날 위에 세우지 않기 위해 나는 아예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해버렸다. 




 최근에 엄마에게 왜 나를 그 학교에 7년간 방치했냐고 직접적으로 원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엄마가 잘 버텼다고 했다. 나는 그 말도 화가 났다. 왜 버텨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만 했냐고, 그래서 엄마에게 나는 믿을만한 아이가 아니었는데 왜 나를 믿었냐고 마음껏 원망하면서 오열했다.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후련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원망을 표출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엄마를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웠지만 엄마는 성인이고, 버텨낼 수 있었고, 이건 원래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나는 많이 편해졌다. 나를 심하게 재단하지 않고, 조금이나마 방어태세를 풀고 내가 아닌 세상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그 시절 나와 같이 어른인 척하며 또래 아이들과 섞이지 못하고 그 아이들의 문화를 경멸하면서도 내심 섞이고 싶어 하는 못생긴 여자아이를 볼 때면 그 시절로 돌아간 것과 같이 괴롭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더는 숨 쉴 수 없을 것 같아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하염없이 바닥을 쳐다보다, 분명 언젠가는 죽을 거야 하며 마지못해 돌아섰던 그 시절과 달리, 나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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