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는 불안,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르는 역사
내 남동생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다. 어쩜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애는 느렸고, 느긋했다. 나였다면 불안해서 발을 동동 굴렀을 상황에서도.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그 애는 괜찮았고, 몇 개월간 집에서 게임만 해도 괜찮았으며, 수능을 망치고 그저 그런 대학에 진학해도 괜찮았다.
나는 그 애에 비해서 항상 종종걸음을 치면서 삶을 살아내는 것 같았다. 작은 일에도 항상 불안해했다. 나는 쉬는 것을 힘들어했고 항상 무엇이든 하고 있어야 했다. 나의 시선에서 그 애가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짝 부럽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이런 차이를 느끼고는 있었지만 의식 밖으로 명확히 인식하지는 못했다. 현재 나는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삶에서 겪은 여러가지 일들과 높은 긴장, 불안 때문에 어느 순간 삶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상담 선생님께서 엄마가 내가 아들이기를 바랐을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까지는 엥 엄마가? 그런 느낌은 한번도 받지 못했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 상담이 있고 얼마 뒤 시골에 김장을 하러 가게 되었다. 친가에서 김장을 하면서 엄마가 나의 소위 '남성적'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면모들(짧은 머리라던지, 낮은 목소리라던지)을 친할머니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저게 자랑할 만한 일인가? 전혀 아니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해석되든, 여성으로 해석되든 알게 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의 그런 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 처음으로 엄마는 진짜 내가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바랐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의 삶은 K-장녀의 표본이었다. 엄마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 오빠와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했다. 어려운 시절 사실상 엄마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엄마의 큰오빠는 치과의사가 되었다. 말썽쟁이 작은 동생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진학했다. 하지만 엄마의 청춘을 바친 노고는 인정받지 못했다. 외할머니에게는 세상에 인정받는 잘난 아들이 더 중요했다. 어느 날 엄마는 외가로부터 '가난해서 창피하니 친척 결혼식에 오지 말고 축의금만 보내라'라는 문자를 받고 외가와 의절했다.
이런 엄마에게 '여성'이란 희생의 아이콘이었다. 여성은 희생으로써 주변 인물들을 키워내는 존재였고 희생으로써 인정받는 존재였다. 또한 희생당하는 존재이므로 주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항상 타자화되는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삶을 살아온 엄마가 첫째가 딸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 아이도 희생당하는 인생을 살아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적으로 첫째 딸은 엄마가 자신과 동일시하기 가장 좋은 대상이라고 한다. 엄마는 내가 항상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길 바랐다. 무슨 일이 있던 간에 그건 내 잘못이었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도 그건 내 스스로 '아이들을 이끌어서(따돌림 당하는 애가 어떻게 아이들을 이끌 수 있겠는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고, 대안학교에 다녀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했음에도 '내가 알아서' 집에서 공부해서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항상 할 수 있고 해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희생당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구나 싶다. 아들인 동생에게는 기준이 훨씬 유해졌다. 동생은 조금 못해도 되고 꼭히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뭔가를 해내면 그건 나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고, 동생이 무언가를 잘하면 그건 그 애의 재능이거나 혹은 그 애가 머리가 좋아서 등, 그 애의 타고난 능력으로 취급되었다. 그 애가 노력하기 시작한다면 훨씬 잘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항상 들어왔다. 그 결과 나는 능력도, 대학도, 어떤 사회적 지위의 면에서도 둘째 남동생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항상 열등감에 시달렸다.
이렇게 딸인 나는 아들인 동생과는 다르게 엄마의 '여성'이라는 불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엄마의 무의식 속에서 남성인 아들과 아빠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서 당연히 희생해야 할 존재들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종종걸음을 치며 살아왔구나. 내 동생은 믿는 뒷배가 있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태평했구나.
엄마는 지금도 직장이 없는 아빠와 휴학생인 동생을 책임지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흔하게 봐 온 풍경들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력 강한 엄마, 혹은 누나와 태평한 아들. 나뿐만이 아니지 않을까?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희생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엄마의 인식 속에 여성은 그런 존재니까. 내가 교사가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 엄마가 과거에 했던 그런 역할을 나에게 기대하게 될까? 나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엄마의 세계 인식일 뿐임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여성이라는 불안의 역사는 내가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