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에게 시골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곳이다. 그중 가장 불편했던 건 바로 ‘이동 수단’.
당연히 운전은 할 수 없고, 자전거도 마음처럼 잘 타지 못할 때는 그저 튼튼한 두 다리를 믿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방법 밖에는 없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 동네 길은 매끈하게 포장된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땅의 부스럼과 충격을 그대로 전달하는 롤러블레이드 같은 이동수단도 마음껏 탈 수 없었다. 게다가 혹시나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나갔는데 목적지가 왕복 2시간은 되는 거리라면… 생각만 해도 집에 돌아오는 길이 아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골 아이는 늘 아빠 차에 신세 아닌 신세를 진다. 걸어서 40분은 걸리는 등하교도 아빠가, 빠른 걸음으로도 족히 30분은 걸리는 버스 정류장까지도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싶어도 40분은 가야 하는 슈퍼 또한 아빠가 필요하다. (놀라운 건,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
어려서 아빠가 안 계실 때는 오토바이를 타시는 할아버지 등에 매달린 적도 많다. 특히 겨울철 해가 빨리 지는 깜깜한 저녁이면 누구라도 나를 데리러 나왔어야 하기에, 아빠, 할아버지, 삼촌, 가끔 동네 아저씨들 까지도 나의 이동수단(?)이 되어 주셨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지금의 시골 동네, 그러니까 할아버지 댁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그저 성이 ‘강’씨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을 강냉이로 불리고 있다. 그러니 이 글에서도 강냉이라고 부르겠다.
강냉이네 집은 학교 근처였다. 어렸을 때 강냉이네 집에 참 자주 놀러 갔는데 학교가 끝나자마자 10분이면 도착하는 그 친구의 집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교 후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강냉이네 집으로 향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우린 꽤 친한 친구 사이였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주말에도 만나서 노는 일이 많았다. 그때에도 우리 집 보다는 강냉이네서 자주 만났는데, 강냉이네 집 근처에는 슈퍼도 있고, 학교 운동장도 있어 놀 거리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 양심이 있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매우 사적인 주말 외출에는 아빠 찬스를 쓰지 않았다.
게다가 나에게는 ‘킥보드’가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 아기들도 킥보드를 타지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킥보드를 처음 봤다. 먼저 산 건 강냉이였다. 강냉이네 집은 나름 부유한 편이었는데(어린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신기하고 좋은 물건들이 많았다.
킥보드에 한 발로 서서 발을 팡팡 구르며 신나게 달리는 강냉이가 너무너무 부러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철이 일찍 들어 엄마 아빠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보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킥보드는 달랐다. 격렬하게 갖고 싶었다. 특히 강냉이의 킥보드는 달릴 때 작은 바퀴에서 쉴 새 없이 화려한 불빛을 뿜어내는 최신판이었는데, 빙글빙글 불빛이 돌아갈 때마다 부러움에 내 눈도 빙글빙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킥보드를 사달라고 졸랐고, 결국 킥보드를 얻어냈다. 비록 불빛이 나오는 고급 진 버전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강냉이 옆에서 헉헉대며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뻤다.
킥보드가 생긴 후로 나는 강냉이네 집에 갈 때면 항상 킥보드를 탔다. 해가 쨍쨍하건 모래바람이 불던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갑자기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만 강냉이가 좋아서 노는 게 아니라 우리 둘이 좋아서 함께 노는 건데, 물론 강냉이네 집이 더 좋은 놀이터지만 그래도 왜 매번 나만 이렇게 힘들게 가야 하지?
나는 주말이 오길 기다렸다. 드디어 주말이 왔고 어김없이 전화가 울렸다. 강냉이였다. 강냉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물었다.
“몇 시까지 올래?”
나는 대답했다.
“점심 먹고 갈 건데, 우리 중간에서 만나자.”
“밖에서 놀 거야? 왜~ 우리 집에서 놀자~”
“그래. 집에 갈 거야. 근데 중간까지 나 데리러 나와. 맨날 나만 가는 거 좀 불공평해.”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강냉은 그때나 지금이나 착한(?) 친구였다.
“그래! 그럼 삼거리에서 만나!”
기뻤다. 싫다고 할 줄 알았던 강냉이 이렇게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하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엄마에게 빨리 점심을 달라고 했다. 후다닥 밥을 먹고 강냉과 만나기로 한 삼거리까지 킥보드를 타고 냅다 달렸다. ‘조금만 가면 삼거리에서 강냉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킥보드는 날개라도 단 듯 가벼웠다.
삼거리에 도착한 나는 강냉이네 방향 쪽을 바라봤다. 저 끝에서 강냉이가 킥보드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머리 위로 크게 손을 흔들었다. 강냉이도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도 환하게 웃고 있는 입이 보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함께 노는 날이면 항상 삼거리에서 만났다. 물론 킥보드와 함께였고, 마치 규칙처럼 늘 그랬다. 심지어 재미있게 놀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강냉은 날 삼거리까지 데려다주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내내 킥보드를 타고 삼거리에서 만났고, 서로의 모습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큰 미소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 나는 강냉이에게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강냉이는 이쁘고(지금도), 착하고, 집도 좋고, 좋은 물건과 옷도 많았다. 나는 그렇지 못했는데 그래서 더욱 강냉이와 무엇을 할 때면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강냉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늘 한결같았다. (그렇다고 내내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뭇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우리는 지겹게도 다퉜다. 물론 금방 화해했지만 말이다.)
여태 강냉이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새로운 마음이 든다. 아마 지금까지도 강냉과 내가 좋은 친구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강냉이가 가진 동글동글한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더하여 문지방 닳도록 갔던 강냉이네 집에서 난 밥을 얻어먹는 일이 많았는데, 단 한 번도 불편한 기색 없이 반겨 주신 강냉이네 부모님께도 감사하다.